1945년 여름, 스페인 내전 직후의 바르셀로나에 다니엘이란 이름을 가진 어린 소년이 아빠의 손에 이끌려 미명에서 깨어나는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다. 어릴 적 엄마를 잃은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아빠는 '잊혀진 책들의 묘지'로 데려간다. 이곳의 기본 수칙은 첫 방문 시 자신만의 책 한 권을 얻을 수 있는 대신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누설할 수 없다는 점! 다니엘이 우연찮게 고른 책은 훌리안 카락스라는 자가 쓴 『바람의 그림자』이다. 후에 놀랍게도 다니엘은 훌리안의 모든 작품들을 불살라버리고 그의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검은 사내와 맞닥뜨리는데...

아름다운 소설이고, 신비로운 소설이다. 온라인상의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추천받은 책이었는데 처음 1권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그래서 읽는데도 꽤 오래 걸린 책이다. 내용이 어려운 게 아니라 초반엔 문체에 적응되지 않아서 읽기 어려웠다. 그동안 너무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들만 접한지라 쉬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2권들어서 이 소설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적응하기 힘들었던 문체도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 되었다.

내용 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인다. 꽤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그 등장인물들 간에 이야기가 장황하게 펼쳐지는 것 같지만, 나중에 뒤돌아 보면 촘촘한 거미줄처럼 서로서로 연관이 되어 있었다. 2권 후반부에 등장하는 '누리아 몽포르트'의 편지글은 지금까지 펼쳐온 이야기를 한번에 정리해주는 역할을 해주는데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퍼즐을 한데 묶어주는 역할) 혹시나 이야기의 어느 한 부분을 이해 못 하거나 정리하지 못한 독자들에게도 제대로 이해할 기회가 된다. 

글자 하나하나가 만나서 단어가 되고 단어가 단어를 만나서 문장이 되고, 문장이 차곡차곡 쌓여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탄생한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하다. 오랜만에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이 책과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창조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으로 책과 음악을 꼽는데 이런 책 때문에 아직까진 음악보단 책 쪽에 더 애정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