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세종대왕에 대한 책이 별로 없는 이유는 그에 대한 자료의 방대함에 있다고 한다. <세종실록>만 해도 45권 분량이고 다른 자료들까지 모두 하면 그 자료의 방대함에 정리하기도 전에 질려버릴 만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신 위대한 인물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자세하게 어떤 식으로 그 빛나는 업적들을 이룩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런 이유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건데 그야말로 세종대왕에 대한 엑기스만 들어 있어서 세종대왕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양녕은 온갖 호색 행각으로 태종의 미움을 사게 되고 급기야는 세자 자리에서 폐위된다. 새롭게 세자에 책봉된 충녕은 무사히 임금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태종이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세종이 아닌 양녕이 그대로 왕이 되었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암울하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가장 중요한 훈민정음 창제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니…. 양녕이 왕이 됐다면 지금까지 우린 한문을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 초반에 양녕의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오는데 가장 재밌었던게 태종이 양녕을 한양으로 내쫓을 때 양녕이 태종에게 올린 글이었다. 그 글을 요약해 보자면 '아버지 여자는 다 궁중에 들이면서 왜 나는 안 되느냐?' 였다. 시대를 생각하고 글쓴이가 세자이고 글을 읽는 이가 임금이라고 생각해보면 참으로 당돌하고 어이없는 글이 아닐 수 없다. 태종도 글을 읽고 재상들에게 '나는 세자의 글을 읽고 몸서리가 쳐진다.' 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태종이 얼마나 세자 양녕 때문에 속을 썩었을지 조금은 상상이 간다.

세종의 업적을 크게 나누자면 훈민정음 창제, 과학 혁명, 영토 확장, 음악의 발전 등을 들 수 있다. 책을 읽어보니 세종 본인도 똑똑하고 현명한 왕이었지만 그의 뜻을 받드는 신하들 또한 걸출한 인물들이 많아서 세종의 업적이 더 빛날 수 있었다. 유유상종이라고 똑똑한 임금 곁에는 똑똑한 신하가 모이고, 아둔한 임금 곁에는 아둔한 신하기 모이나 보다. 천재가 인성까지 완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갖췄으니 세종시대가 빛나는 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세종대왕은 원래부터 좋아했지만, 이 책을 읽고 더 좋아졌다. 정말 존경스럽고 본받고 싶은 위인이다.

"확실히 그는 위대한 왕이었다. 아니, 단순히 왕으로서만이 아니라 대단한 인격자이며 걸출한 인간이었다. 그에겐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남다른 용인술이 있었으며,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을 살 줄 아는 폭넓은 아량이 있었다. 왕이기 이전에 학자였고, 인간미 넘치는 선비였으며, 공평무사한 판관이었다. 다른 왕 아래선 전혀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던 인물도 그를 만나 날개를 달았고, 다른 시대엔 쓸모없는 지식으로 여겨지던 것들도 그의 시대엔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시대에 만들어진 보석들은 조선왕조의 주춧돌이 되고, 대들보가 되었다."

                                                                                - <한 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