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8

2023. 5. 28. 21:35

조용한 피아노 연주곡 틀어 놓고 거실에 앉아 블로그에 글 쓰는 한가로운 일요일 저녁이라니. 이게 행복이지 행복이 따로 있나 싶다. 이래서 주 4일을 해야 하는데 나라님이 나서서 69시간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라니 불쌍한 한국 직장인들이여. 클래식 잘 모르지만 배경음악으로 틀어 놓기엔 가사 있는 노래는 거슬려서 종종 듣는 편이다. 오늘은 cho성jin 드뷔시 연주 앨범 듣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어우러지니 아름답다. 이분 공연 예매가 그렇게 피켓팅이라던데 저 아름다운 연주를 현장에서 라이브로 들으면 어떨지 궁금해진다. 나는 똥손이라 평생 못 듣겠지. 내가 갈 건 아니었지만 Bruno도 처참하게 실패했고요. maneskin 온다고 하면 가보고 싶은데 이 분들도 피켓팅일 게 뻔해서 ㅜㅜ



상상의 악은 낭만적이며 다양하지만, 실제의 악은 음산하며 단조롭고 삭막하며 지루하다.
상상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제의 선은 항상 새롭고 경탄할 만한 것이어서 사람을 도취시킨다.
악이 침범하는 것은 선이 아니다. 선은 침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타락한 선만이 침범을 당한다.
사람은 악을 행할 때에는 악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악은 빛을 피하기 때문이다.
시몬 베유 <노동일지> 中

며칠 전 우연히 본 글인데 '선은 침범할 수 없는 것이며 타락한 선만이 침범당한다'는 문장이 와닿는다. 현실에서 순수 선과 순수 악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 그 중간즈음에 존재하다 변화 혹은 변질되는 거니까.. 인간은 대부분 타락한 선안에 살고 있고 그래서 더 악에 빠지기 쉬운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이 실제의 선에 도취된 다는 건 요즘 빠져있는 서바이벌 게임 예능만 봐도 쉽게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특정 팀에 감정 이입을 하고 응원하는 건 그들에게 상대적 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배신(악)보단 믿음(선)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건 인간의 본능이니까. 하지만 현실 세계엔 모호한 선과 모호한 악이 대부분이기에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저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이북 받아뒀는데 대충 훑어보니 분량도 많지만 내용이 와 읽을 엄두가 안 난다. 예스는 1년, 밀리는 두 달 이용권 등록해 놨는데 아주 푹푹 썩히고 있다. 가벼운 책부터 조금씩 읽고 있긴 한데 좀처럼 시동이 안 걸려서 아직은 속도가 경운기 수준. 온갖 자극적 영상이 주는 도파민에 중독된 것이 분명하다. p겜부터 끝나야 정신을 차릴 거 같은데 한 번에 완결까지 다 올려주지 ㅠㅠ 그래도 이 주 후면 끝나니까 이 과몰입 상태도 얼마 남지 않았다.



블로그 포스팅을 안 하다 보니 글 하나 올리기도 어렵다. 이것저것 포스팅 할 거리는 넘치는데 만사 귀찮아서 주말에도 영상만 보고 널브러져 있다. 매일 씻고 집 청소하는 것만도 용 할 지경. 며칠 전 생일에도 먹고 싶은 거 사준다고 나가자고 했는데 귀찮아서 안 나가고 배달시켜 먹고 말았다. 먹을 거 보단 그냥 돈으로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는 거고. 이렇게 만사 귀찮아하고 선천적으로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인 내가 그나마 회사라도 다니니 인간 흉내라도 내며 살지 싶다. 한 회사를 오래 다녔더니 이 사람들도 내가 말 없는 거에 적응해서 터치가 없으니 편하기도 하고. 뭐든 익숙해지면 발전이 없는 건데 익숙한 게 제일 좋은 걸 어쩌란 말이냐.



연휴 내내 비가 온다. 그래도 집에 있으니 좋다. 오늘 포스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