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 대한 애정과 며느리를 구박하는 재미로 사는 듯한 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온갖 구박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살림을 꾸려가는 엄마, 자신의 어머니와 부인 사이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 그리고 주인공 동구와 6년 터울인 여동생 영주는 처음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할머니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지만, 타고난 영특함으로 곧 모든 가족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난독증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동구는 이 집안의 장남이자 천덕꾸러기. 그런 동구에게 빛과 희망이었던 박영은 선생님과 친구처럼 듬직했던 주리 삼촌.

동구 때문에 울고 웃다 보니 끝나버렸던 책이다. 그 어린 나이에 웬만한 어른보다 속 깊고 착했던 동구. 동구는 여동생 영주를 끔찍하게 아끼는 오빠였고, 시어머니와 아버지 때문에 속상해하는 엄마를 위하는 아들이었고, 가장으로서 무능력한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들이었고, 끝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할머니까지 감싸 안았던 손자였다. 다른 등장 인물들 각자의 사연도 안타깝고, 이해는 갔지만 난 처음부터 끝까지 동구가 기특하고, 예쁘고, 또 너무나 안타까웠다.

주변의 어른들이 어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이는 일찍 철이 들고 만다. 아니 진짜 철이 들었다기보단 철이 든 척을 한다. 자신보다는 어른들의 감정을 신경 쓰고 그에 맞추느라 다른 어린아이처럼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은 꼭꼭 숨긴 채 어른인척한다. 가끔 언론매체에서 자기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하고, 어른스럽고, 자신보다는 부모나 형제들을 신경 쓰는 어린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져 온다. 저 아이는 저렇게 행동하고 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 참고, 자신의 진짜 감정을 억누르고 있을까 싶어져 슬퍼진다.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작은 그릇에 너무 많은 물을 담으려 하는 건 결국엔 그 그릇을 망가트리는 결과 밖엔 불러오지 못한다. 제발 부모의 위치에 있는 어른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아이만큼은 아이답게 키웠으면 좋겠다. 어린아이답게 어리광도 부리고, 철없고, 순진하고, 감정의 숨김없이 솔직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땅이 기름져야 식물이 잘 자라 건강하고 빛깔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행복한 유년 시절의 경험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의 큰 힘이 있음을 어른들은 꼭 알았으면 싶다.

쓸데없는 말이 많아졌는데, 지금까지 읽었던 성장 소설 중에서 최고였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