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이 산속 산방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며 써내려간 착하디착한 이야기. 너무 바르고 착하고 옳은 이야기들뿐이라서 읽다가 괜스레 심통이 났다. "그렇게 바르게 산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요."  "그렇게 착하게 살면 이용만 당하고 내 속만 숯처럼 새카맣게 썩을 뿐이에요."  "그렇게 옳은 이야기만 하면 답답하고 꽉 막힌 사람으로 찍혀요." 이렇게 딴지를 걸고 싶은 책이었다. 이미 속세에 찌들어 있는 내겐 이렇게 옳고 바르며 착한 글은 쉽게 스며들지 않는가보다. 머리로는 알겠으나 마음속까지 울리진 못한 글이었다.

책의 내용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자연과 가까이 살았던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 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도시와 시골의 중간쯤 되는 마을이었다. 100m 앞 작은 도로를 경계로 건너편은 논, 밭 하나 없는 동이었고 내가 살던 곳은 면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여자라고 봐주는 법 없이 세 살 터울인 오빠와 나 똑같이 일을 시키셨다. 나는 동작이 빠르진 않지만 꾀부리지 않고 묵묵히 내 몫의 일을 하는 타입이라서 꾀부리며 놀기 좋아하는 오빠보다 항상 내가 더 일을 많이 했었다. 이건 지금도 좀 억울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오빠는 여우, 나는 곰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커가면서 순진한 곰에서 반항적인 곰으로 변하긴 했지만….

우리 집은 내가 중학교 다닐 무렵까지 벼농사를 지었었고 나는 그곳에서 거둔 쌀을 먹으며 자랐다. 봄이면 이앙기로 모내기를 끝낸 논에 맨발로 들어가 기계가 미처 벼를 심지 못한 공간에 뜬모를 했던 적도 있었다. 차갑고 미끌거리는 논바닥의 느낌은 지금도 발끝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논바닥에 발을 담그고 나올 때면 종종 다리에 붙어 있던 거머리도 기억난다. 다리에 붙어 열심히 피를 삼키는 거머리를 바로 떼어내지 않고 관찰했던 적도 있었는데 피를 빨아 점점 통통해지는 거머리는 징그럽지만, 피를 빨 때도 빨고 나서도 고통을 주진 않았었다. 피를 빨 때 마취 성분을 내뿜는 건 그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생존법 일 것이다. 봄에 모내기가 끝나면 본격적인 벼농사의 시작이다. 수시로 논에 들러 피를 뽑아줘야 하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논에 물이 잘 빠지도록 논두렁에 물길을 열어줘야 한다. 종종 병충해 예방 차원으로 약도 쳐줘야 하고, 가을 누렇게 익은 벼를 베어낼 때까지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할아버지 방엔 나무를 때는 아궁이가 있었다. 그 아궁이엔 당연히 커다란 가마솥도 걸려 있었고 가을에 메주를 띄울 때면 그곳에 메주콩을 삶았었다. 모락모락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익어가는 메주콩. 갓 삶아낸 메주콩이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아궁이 속 남은 불에 밤이며 고구마, 감자를 구워 먹었던 행복한 기억도 있다. 할아버지께서 뇌출혈로 거동이 불편해지시기 전까지는 그 아궁이 방에 불을 때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일찍 잠들고 일찍 깨어나는 생활을 했다. 아랫목 장판이 뜨거운 열기에 까맣게 변했던 아궁이 방은 몇 년 뒤 다루기 편한 보일러 방으로 변했지만, 평생 내 기억 속에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뱀과 몇 가지 곤충을 제외하고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지금은 곤충과 벌레라면 기겁을 하지만 그 시절엔 잠자리도 잘 잡고 놀았고, 도구를 이용해 벌도 잡았었고, 개구리도 잡아 뒷다리도 구워먹으며 놀았었다. 집 근처 텃밭엔 봄이면 고추며 배추, 무, 깨, 콩, 호박, 감자, 고구마, 토마토 등을 빼곡히 심었고, 가을 무렵엔 벌레가 먹고 남은 것을 우리가 거두어 먹었다. 봄에는 부지런히 무언가를 심어야 했고, 가을엔 또 부지런히 무언가를 거둬들여야 했기에 어린 마음에 단순히 일하기가 싫어서 봄과 가을을 싫어했었다. 시골에서 자라 농사일을 도와 본 사람들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감의 향연은 어린아이가 군말 없이 해내기엔 벅찬 상대였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봄이면 냉이와 쑥을 캐러 쏘다니고, 여름엔 아버지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냇가로 고기를 잡으러 가고, 가을엔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먹고, 겨울엔 비료 포대를 들고 뒷산에 올라가 썰매를 타며 놀던 어린 시절.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엔 사람 때문에 행복했던 기억은 별로 없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던 자연 때문에 행복했던 기억은 무수히 많다. 낮에는 햇볕을 쬐며 놀고, 밤에는 달빛을 받으며 잠드는 생활 속에 내 몸과 마음은 하루하루 튼튼하게 자라났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잔병치레는 거의 없을 정도로 건강한 편이다.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사는 것이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행복한 일일 텐데 인간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