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조국이 식민지로 삼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열다섯 백인 소녀와 중국인 백만장자 청년이 있다. 소설 속에서 아름다운 백인 소녀와 부유한 중국인 청년은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여리고, 슬프고, 우울하며 허무하다. 노름꾼 큰오빠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어머니, 큰오빠 밑에서 기 한 번 피지 못하고 사는 착해빠진 작은 오빠, 열다섯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마치 창녀처럼 행동하는 소녀 자신, 아버지의 재산은 물론 아버지의 삶까지 물려받아야 하는 나약한 중국인 청년. 소설 속 인물은 모두 무언가 결핍되어 있고 무언가에 미쳐있고 무언가를 원하고 있지만, 그 무언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 모호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쌓여 삶이 완성되는 거겠지만, 소설 속 그들에게도 현실 속 나에게도 그 과정이 괴롭다.

내 취향엔 맞지 않는 글이어서 적은 분량임에도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기대했던 책이었는데 아쉽다.


내게 전쟁은 큰오빠와도 같다. 전쟁은 큰오빠처럼 도처에 번지고, 침입하고, 훔치고, 또 감금한다. 또한 모든 것에 섞여들어 머릿속에도 몸속에도 생각 속에도 존재하며, 깨어 있을 때나 자고 있을 때나 시종일관 제어할 수 없는 취기 같은 욕망에 사로잡혀 사랑스러운 영토 같은 어린아이의 몸을, 나약한 자들이나 패배한 민족들의 육체를 점령한다. 악은 바로 거기에, 우리 피부에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