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프랑스 소설이 읽고 싶어서 골랐던 소설이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것이 튀어나왔다. 서로 다른 이유로 묻어 두고 싶었던 잔혹한 인류의 역사가 한 명의 잡지 기자에 의해 다시 눈앞에 놓인다.

2002년 5월 파리의 잡지 기자 '줄리아'는 2차 대전 프랑스에서 일어난 벨디브 사건을 취재하건 중 자신의 시댁과 연관된 1942년 7월 파리의 유대인 소녀 '사라'의 가족들에 대해 알게 된다. 60년 동안 묻혀 있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은 모두에게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프랑스인도 아닌 미국인 줄리아가 몇십 년이 지난 가족의 비밀을 밝히는 것도 모자라 피해자의 유족에게 멋대로 사과까지 하는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일까? 애초에 사과라는 행위 자체가 받는 사람을 배려한다기보단 하는 사람 마음이 편해지고자 함이 아니던가. 사소한 다툼에 대한 사과라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얼마든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13,152명이 이유 없이 대학살을 당한 역사에 대한 사과는 평소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그래야 맞다. 그래서 소설 속 줄리아의 무신경한 사과에 조금 화가 났다. '모르고 지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싶었다는 줄리아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행동은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끔찍하고 기억하기 싫은 과거일지라도 역사는 기억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누구도 배려하지 않은 줄리아의 방식은 찬성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어떤 방식이 가장 바람직한지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마지막 부분 새로 태어난 자신의 딸에게 '사라'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장면을 읽으면서 역시 소설은 소설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를 감동시킨 기적 같은 소설'이라는 선전 문구가 무색하게도 감동보단 불편함이 남는 소설이었다.


미셸. 꿈속으로 찾아와 나를 데려가주렴. 내 손을 잡고 멀리 데려가주렴. 이 삶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 나는 열쇠를 보며 너를, 그리고 과거를 그리워해. 전쟁 전의 순수하고 편안했던 날들을. 내 상처는 절대 아물지 않을 거야. 내 아들이 날 용서해주었으면 좋겠구나. 그 아이는 절대 모를 거야. 아무도 절대 모를 거야. Zakhor. Al Tichkah. 기억할지어다. 절대 잊지 말지어다. - P.397~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