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커가는 중빈이는 아프리카 여행에선 여덟 살이 되어있었다. 중빈, 소희 모자의 이번 여행지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우간다. 내 얕은 지식의 창고에서 '아프리카'로 저장되어있는 파일을 불러와 보자면 더운 날씨와 가난, 아직은 덜 훼손 된 자연과 동물들, 절대 몸이 편한 여행은 할 수 없는 여행지라는 편견 정도였다. 여행기를 읽어 내려가면서 내 지식 창고 속 아프리카 파일은 수정되기도 하고, 삭제되기도 하고, 추가되기도 하면서 더 풍요로워졌다.

이번 여행기에서 시각적으로 기억에 남는 곳은 역시 탄자니아 사파리 투어였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품에서 몸을 우아하게 움직이는 커다란 기린과 일만 마리의 누떼, 게으르고 배부른 사자, 군무를 추며 날아 오르는 플라밍고 무리들, 성난 코끼리를 가까이에서 몸소 느끼는 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어릴 적 동물의 왕국이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풍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질 때의 그 기분은 정말 말로는 형언할 수 없으리라. 그곳에서 흘린 소희의 눈물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청각적으로 기억에 남는 곳은 소희를 광란으로 빠트린 잔지바 뮤직페스티벌이었다. 아프리칸들의 유전자엔 리듬감이 새겨져 있기라도 한 건지 그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한다. 그들 사이에 끼여 소희도 나중에는 중빈이까지도 신 나게 춤추며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심적으로 가장 가깝게 와 닿았던 것은 중빈이의 말처럼 사람 그 자체였다. 현지인들은 물론 중빈이도 소희도 그곳에서 만난 여행자들도 모두 내 마음의 섬에 닿았다가 멀어졌다. 그들 모두가 좋은 기억을 남기고 떠나지는 않았다. 바닷가 조약돌 모양이 모두 다르듯 아프리카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달랐고, 모두 다른 형태의 기억을 남기고 떠났다. 기쁘고, 슬프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고, 재밌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아프리카의 기억들. 나는 아프리칸이 아니기에 온전히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저 아직 어린 아프리카의 소녀에게 한 달에 몇만 원 적은 돈을 보내는 것으로 그들에 대한 원인 모를 미안함을 덜어 보려 할 뿐이다.

오소희 작가의 여행기는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현실적인 여건상 작가처럼 어린 아이를 데리고 해외 여행을 자주 떠날 수는 없겠지만 여행지를 국내로 돌린다던지 나름의 타협안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길은 열려있지 않을까. 내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부모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여행을 하면 나중에 기억이 나지 않을 텐데요."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태도예요. 자신을 열어야 할 순간에 열어버리는 것, 그래 보는 것, 그럼으로써 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요. 오늘 머문 이곳의 지명과 이곳에 있던 아름다운 성곽 따위는 잊어도 좋아요. 그러나 오늘 열어본 경험은 '태도'가 되어 퇴적층처럼 정직하게 쌓일 겁니다. 그 태도는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면서 '지금 이것이 삶이다'라고 느끼는 순간, 질질 끌지 않고, 미뤄두지 않고, 자신을 통째로 던져 '확 살아버릴' 줄 알게 하겠죠. 그러한 경험 없이 성인이 되면, 반쯤 죽은 듯 살게 됩니다. 일상의 노예가 되지요. 저는 생명으로 자식을 이 세상에 데려왔으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P.235~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