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 미야베 미유키

2012. 3. 22. 20:52



내가 사랑하는 미미여사의 시대물이 새로 출간됐다. 행복한 마음으로 주문을 넣고 책을 받아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기다리던 책을 손에 넣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 오래 묵어 빛바래고 손에 착 감기는 책도 좋지만 새로 찍혀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의 상큼함 역시 좋다. 미미여사가 써내려간 시대물은 이번에도 재미있고 따뜻했다. 무슨 괴담이 이렇게 눈물 날 정도로 따뜻한 걸까... 말 그대로 그냥 '괴담'이기만 했다면 별로였을 텐데 '따뜻한 괴담'이라서 좋았다. 미미여사의 시대물을 읽을 때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이 제일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흑백>은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 있는 흑백의 방에 찾아와 주인공 오치카에서 기묘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오치카 자신의 이야기가 연작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처음 나오는 '만주사화' 이야기를 읽고 실제 만주사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강렬한 붉은색이 인상적인 꽃이다. 아마 무리지어 피어 있으면 좀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 두 번째 이야기 '흉가'도 인상적이었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네 번째 나오는 '마경'이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떠오르면서 한편으론 안쓰럽고 한편으론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 실린 괴담 중에선 '마경'이 가장 오싹하지 않나 싶다. 모든 이야기는 다섯 번째 이야기 '이에나리'로 이어져 마무리되는데 이 부분이 또 어찌나 좋던지. 미미여사의 시대물엔 온정이 느껴져서 정말 정말 좋다.

나는 다음 세상에 꼭 여자로 태어나야 한다면 이영애의 외모와 미미여사의 글솜씨를 겸비한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글 잘 쓰는 미녀 작가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겠어!!!

"무엇이 백이고 무엇이 흑인지는, 실은 아주 애매한거야." -page.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