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김언수

2011. 12. 11. 21:50



137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한 연구소에 취직된 주인공이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하루에 십 여분 남짓. 그 이외의 시간은 자리를 지키는 게 그의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소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의 일도 같다. 일명 신의 직장에 근무하는 주인공은 하루하루가 너무나 무료하고 심심했다. 하루는 연구소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13호 캐비닛'을 발견하게 되는데 남는 건 시간밖에 없었던 그는 그 이후로 매일매일 캐비닛 안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13호 캐비닛엔 평범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혀에 도마뱀을 키우는 여자,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씩 잠에 빠져 있는 토포러,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난 사람,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는 메모리모자이커, 고양이가 되고 싶은 거구의 남자 등등...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그들의 이야기. 작가는 그들을 '심토머'라고 명명했다. 그저 무료한 일상이 지겨워서 13호 캐비닛에 관심을 두게 된 주인공은 언제부턴가 캐비닛의 주인 권박사의 조수로 일하게 된다. 단순한 무료함과 호기심에 발을 들여놓은 13호 캐비닛. 과연 그는 무료함과 호기심의 대가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책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이다.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작가의 귀싸대기를 걷어 올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으니 작가에게도 수많은 독자 중의 한 명인 나에게도 무척 다행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