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 사계절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이 한 문장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내 어린 시절은 어둡고 긴 터널 같았다. 그 영향인지 어린 시절을 어린이답게 보낼 수 있었던 사람들을 항상 부러워하며 산다. 지금의 나는 어둡고 긴 터널에서 벗어났지만,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어두운 그곳에 갇혀 있다. 마음의 상처는 무뎌질 순 있지만 사라지진 않는다.
어릴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착하다'와 '웃어라'였다. 살기 위해, 버림받지 않기 위해 착한 어린이를 연기한 것뿐이지 나도 그냥 평범한 어린아이 일 뿐인데 어른들은 자꾸 착하다는 말로 족쇄를 채운다. 그럴수록 나는 더 열심히 착한 어린이를 연기한다. 그런 아이에게 어른들은 또 '웃으라'고 말한다. 어릴 땐 웃으라는 말에 그냥 네 하며 웃고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웃을 일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웃으란 건지 어이없을 뿐이다. 그저 어른들은 내 어두운 표정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내가 처한 상황이 괴로워서 웃을 수가 없는데 착하다느니 웃으라느니 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폭력적인 말인가? 상대가 어린이가 아닌 동등한 어른이었어도 저들이 그런 말을 쉽게 했을까? 아닐것이다. 어린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저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나라 어른들에겐 어린이를 나와 같은 동등한 인격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어린이 하니까 생각나는데 요즘 거슬리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각종 분야의 초보자를 일컫는 '*린이'. 초보자의 의미는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하여 미숙한 단계에 있는 사람'인데 어린이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지 미숙한 사람이 아니다. '*린이'는 나이로 사람을 차별하는 단어인 것이다. 단어도 유행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지겠지만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책은 독서 교육 전문가인 저자가 독서 교실을 운영하며 만난 어린이 이야기를 위주로 써 내려간 에세이다. 이야기 속 어린이들은 귀엽고 엉뚱하기도 하지만 무척 지혜롭고 똑똑하기도 하다. '다양'을 넘어선 '무한'의 매력을 지닌 어린이들을 만나고 나니 저출생 숫자에 신경 쓰기보단 우리 곁의 어린이부터 제대로 지키는 것이 먼저란 생각이 들었다. 있지 않은 아이들 보단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는 아이들부터 지키자.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에 세상이 거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더 큰 이유는 어린이들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두려워서다.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 사전에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건 너무 위계적인 표현 아닌가. - p.32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 p.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