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 독후감

2020. 9. 6. 20:16


01.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 미야베 미유키 / 북스피어


스기무라 사부로 탐정 시리즈의 매력은 평범함에 있다. 소설 속 소위 탐정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명석한 두뇌와 넘치는 자신감으로 이야기 내내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바쁜데 스기무라는 그런 탐정과는 거리가 멀다. 조용히 이웃집에 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타나 도움을 주는 생활밀착형 탐정이다. 사건을 의뢰하는 이도 의뢰받는 이도 평범한 우리 이웃의 범주 안에 있다. 얼핏 소소해 보이는 사건도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탐정 스기무라의 가장 큰 장점이다. 성실하게 주어진 단서를 파헤치다 보면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것을 발견할 때도 있다.

이번 소설엔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첫 이야기 '절대영도'의 충격이 커서 나머지 이야기는 크게 인상에 남지 않을 정도였다. 안 그래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인류애를 부스러기까지 싹싹 긁어모아 사라지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절대영도라는 제목이 독자의 인류애를 절대영도까지 끌어내리겠다는 뜻이었나 싶기도 하다. 자아도취 탐정은 유쾌한 재미를 남기고 생활밀착형 탐정은 현실이란 병을 천천히 휘저어 끝끝내 묵직한 쓴맛을 남긴다.

스기무라는 전작까진 아마추어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소설에서 처음으로 프로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차근차근 그가 베테랑 탐정이 되는 날까지 지켜볼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 베테랑이 되기보단 아마추어 느낌이 남아있는 지금이 딱 좋겠다.

"저는 우리 할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어요. 술만 마시지 않으면, 도박만 하지 않으면, 바람만 피우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라는 건, 그걸 하니까 안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요." "지당한 말씀이군요"하고 나는 말했다. 에누리 없는 진실이다.

누구의 말이었을까. 나는 떠올렸다. 사람은 모두가 혼자서 배를 저어 시간의 강을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미래는 항상 등 뒤에 있고 보이는 것은 과거뿐이다. 강가의 풍경은 멀어지면 자연히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아니라 마음에 새겨져 있는 무언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