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5월 독후감

2019. 7. 26. 21:12


01. 네 이웃의 식탁 / 구병모 / 민음사 / E

낮은 출생률을 극복하고자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대책은 세 자녀를 낳는 것을 조건으로 혜택을 주는 '꿈 미래 실험 공동주택'이었다. 공동주택에 함께 살게 된 네 가족은 처음 접하는 공동체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내 기준에선 아이 세 명을 낳아야 한다는 것부터 불가능이라 아무리 혜택이 많다고 해도 저런 곳에 들어가지 않을 텐데 소설은 소설이니까 다들 대충 어떻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공동주택에 입주한다. 사람 사는 곳은 으레 그렇듯 공동주택에도 여러 유형의 사람이 존재한다. 의욕에 불타서 없던 일도 만드는 사람,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 배려 없는 사람, 뻔뻔한 사람, 궁상맞은 사람 등이 모여 공동생활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협화음만 커진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관계마다 거리의 기준은 다르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선을 넘으면 불편해진다. 소설에선 생전 처음 보는 타인을 같은 공간에 모아놓고 이웃이란 그럴듯한 허울로 공동체를 강요하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이들을 하나의 공간에 욱여넣는다고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잠시 숨을 참고 하나인 척 구겨져 있을 순 있겠지만 결국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삶의 형태도 모두 다르다.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해지려면 서로 다른 삶의 형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가 필요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배려와 희생 없이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느꼈고, 우리보단 나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 공동체 의식 강요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 = 피곤하게 남 참견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잘 삽시다.


02. 바람이 분다, 가라 / 한강 / 문학과지성사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는 건 이번이 네 번째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작가의 네 번째 소설이기도 하다. 어느 날 책장을 보다가 형광 연두 표지가 눈에 들어와서 읽기 시작했다. 화가 서인주는 폭설에 묻힌 미시령 고개 자동차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이 났지만 서인주와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이정희는 인주가 자살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사망 1년 후 우연히 강석원이 쓴 인주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된 정희는 본격적으로 인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시제가 수시로 바뀌는지라 읽는 이에게 친절한 글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이 소설과 만나 한층 더 위태로운 분위기를 완성한다. 어둡고 서늘하고 끈적하고 위태롭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네 번째와 어울리는 매력 있는 글이었다.


03.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 이슬아 / 문학동네

60년대생 엄마 '복희'와 90년대생 딸 '슬아'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책이다. 엄마 복희 씨는 생각이 열려있고 현실 감각이 있으며 자식을 소유물이 아닌 인간으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복희 씨 밑에서 슬아 씨는 자유롭고 당당한 여성으로 자라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성교육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데 복희 씨는 숨기거나 둘러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딸에게 말해줘서 마음에 들었다. 부끄럽다고 숨겨서 그릇된 성 관념을 심어주기보단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실제로 그 상황에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처법을 알려주는 것이 진짜 성교육 아닐까.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다간 부모들이 더 난리일 테니 답이 없다. 모든 인간은 섹스의 산물이고 어차피 언젠간 다 해볼 건데 뭐 그리 유난인지 모르겠다. 그게 뭐 별거라고. 숨기니까 별거 아닌 게 별거처럼 보여서 호기심이 더 커진다는 걸 모르나 보다. 성교육 얘기는 이쯤하고, 이 책은 모녀의 우정과 사랑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돈벌이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다. 여성으로서 먹고살기 위해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던 처절하지만 아름답고 당당한 삶의 기록. 자식을 키우는 건 영원한 짝사랑이라는 복희 씨의 말에 마음이 찡해졌고, 그 짝사랑을 온전히 받고 있는 자식들이 부러워졌다.


04. 윤미네 집 / 전몽각 / 포토넷

아주 오래전에 충동적으로 사서 책장에 모셔둔 사진집이다. 크기도 크고 사진집이라 가격도 꽤 나갔을 텐데 그때의 나는 무엇에 끌려 이 책을 샀는지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사진작가인 아버지 고 전몽각 선생이 딸 윤미를 중심으로 가족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고 그 사진들을 모아 출간한 것이 윤미네 집이다. 90년 1,000부가 출간되었다가 절판되고 전몽각 선생이 작고하신 후 아내의 사진을 덧붙여 20년 만에 재출간이 되었다. 그 재출간 본이 내 손에 들어 온 것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아이들이 태어나고 커가는 모습과 함께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사진집이다. 사진에 대해선 문외한인지라 작품성은 모르겠지만 한장 한장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사진이었다. 요즘 같은 디지털이나 휴대폰 카메라도 아니고 옛날 필름 카메라로 매번 사진을 찍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정성과 사랑이 대단하다 싶었다. 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딸의 데이트까지 따라가서 사진기사 노릇까지 자처하셨다. 윤미 씨는 그렇다 쳐도 윤미 씨의 남자친구는 얼마나 불편했을까 싶은데 지금은 웃어 넘길만한 추억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사랑 그 자체였던 사진집이었다.


05. 고양이 여덟 마리와 살았다 / 정세라 / 미우

강아지를 키우는 저자가 시골 생활을 하며 만난 고양이들과의 이야기를 그린 웹툰이다.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고 마음에 들어서 이후엔 블로그에 들락거리면서 봤었는데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언제부턴가 세계적으로 고양이 붐이 일어서 온갖 콘텐츠가 생겨나고 있는데 내가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사진과 웹툰이다. 배경이 시골이다 보니 시골 이웃분들이나 온갖 동물, 곤충 친구들까지 등장하는데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굳이 웃기려 들거나 꾸밈이 없어서 좋은 고양이 웹툰이다. 요즘엔 인스타로 만화를 보고 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업로드 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