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4월 독후감

2019. 7. 6. 13:33


01. 금빛 눈의 고양이 / 미야베 미유키 / 북스피어

말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는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가 돌아왔다. 작년에 출간된 <삼귀>를 재밌게 읽어서 후속편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읽는 재미가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 '열어서는 안 되는 방'엔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대가를 받아 가는 행봉신이 등장하는데, 지금까지 읽은 미시마야 괴담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비극적이고 강렬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 이야기 '벙어리 아씨'는 괴담이라기보단 슬프지만 마음이 따스해지는 이야기였고, 세 번째 이야기 '가면의 집'은 세상에 화를 불러오는 악을 봉인해 둔 저택 이야기인데 흥미롭게 읽었다. 다음 미시마야 변조 괴담부턴 청자가 오치카에서 도미지로로 바뀌게 되는데 미미여사는 네 번째 이야기 '기이한 이야기책'과 다섯 번째 이야기 '금빛 눈의 고양이'를 통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오치카를 보내고 도미지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정들었던 오치카를 보내는 건 아쉽지만 새로운 청자 도미지로에 대한 궁금증도 커서 앞으로의 미시마야 이야기가 기대된다.


02.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황선우 / 위즈덤하우스

나이 서른이 넘어가면 대부분 결혼이란 방식으로 가변적 2인 가구를 이룬다. 기존의 가족과 함께 살기도 싫고 결혼이란 제도에 메이고 싶지 않은 이들은 1인 가구를 이룬다. 책 속 그들은 1인 2묘 두 가구를 합쳐 2인 4묘 가구를 이루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로선 환상적인 가족 구성원이다. 가족의 개념을 부부나 혈연으로 국한하는 건 이미 낡은 사고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도 가족이며 여러 동물 친구들 또한 가족이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을 만드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게 맞는 가족을 이루는 것에 있다. 제목만 보고도 부러웠는데 읽고 나니 더 부러워지는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였다.


03. 여행의 이유 / 김영하 / 문학동네

예전 방송에서 '호텔과 집은 잠을 자고 쉬는 장소라는 것은 같지만 호텔은 집에서 해야 할 의무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어 자유롭기에 사람들이 집보단 호텔로 떠나고 싶어 한다'는 작가님의 말을 듣고 매우 공감한 적이 있다. 여행을 떠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것. 언젠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인생이란 긴 여행 위에 있는 우리는 그 짧은 외도가 필요한 것이다. '여행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는 작가의 말은 다소 뻔하게 들렸지만 뻔한 소리를 뻔하지 않게 하는 재주는 여전하셨다. 김영하 표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에겐 조금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지만 가볍게 읽기엔 나쁘지 않았다. 우선 빌려 읽고 이후에 소장하는 걸 추천한다.


04. 돌이킬 수 있는 / 문목하 / 아작 / E

작가의 데뷔작으로 초능력자들과 그들을 없애려는 부패 경찰, 불법 조직 간의 대결을 그린 SF 소설이다. 4만 명이 순식간에 사라진 대형 싱크홀에서 기적처럼 살아 올라온 수백 명의 초능력자들이 있다. 그들은 최준상이 이끄는 무리와 이경선이 이끄는 무리 두 개로 나뉘어 각기 다른 구역에서 생활한다. 이경선의 사망 이후엔 정여준이 새로 그들을 이끈다. 부패 경찰 서형우는 초능력자들을 와해시키고 자멸의 길로 이끌기 위해 주기적으로 그들 사이에 두더지를 심는다. 신입 수사관 윤서리 또한 두더지로 발탁되어 정여준 그룹에 심어졌다. 앞선 두더지들처럼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란 예상과 달리 윤서리는 살아서 서형우에게 돌아왔고 살아서 정여준에게 돌아간다. 이쯤 되면 이미 정체가 드러난 초능력자들이나 서형우보단 윤서리가 궁금해진다. 무엇이 그를 살아 있게 하는가? 과연 그는 살아 있는 것인가?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소재도 신선하고 등장인물도 입체적이어서 영화로 만든다면 전투 장면만으로도 볼거리는 가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