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3월 독후감

2019.06.01 16:37


01. 체호프 단편선 /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 민음사 / E

러시아 단편 문학의 거장 체호프의 단편 소설집으로 1883년에서 1902년 사이에 발표된 글이 실려있다. 흔히 고전이라 불리는 오래된 문학 작품은 문학적 가치는 높을지 몰라도 대부분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기억은 추억으로 미화되는 것처럼 오래된 문학 작품도 분명 그런 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것엔 예외가 있는 법! 그 많은 지루한 작품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반짝이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는데 체호프 단편이 그랬다. 각기 다른 열 편의 단편을 읽으며 제일 강렬하게 느낀 건 체호프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글로 그려내는 것이 작가의 일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해내는 이는 드물기 때문에 체호프가 지금도 거장이라 불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호흡이 긴 장편도 아닌 단편에서 말이지. 제대로 사과를 하고 싶은 남자와 거듭되는 사과에 질린 남자의 대결이었던 '관리의 죽음'이 제일 인상적이었고, 이백만 루블과 독방에서의 5년을 걸고 한 '내기'도 기억에 남는다. 따분한 고전문학에 질린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02. 한국, 남자 / 최태섭 / 은행나무 / E

한국 남자가 쓴 한국 남자에 대한 연구 보고서다. 저자는 조선 시대부터 시작해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 전쟁을 치르고 군사 독재 정권과 민주화 운동, IMF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통해 한국 남자가 어떤 식으로 변모했고, 한국 남성성의 특징을 만든 건 무엇인지 짚어보고 있다. 얼마 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도 그렇고 우리나라가 느리지만,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는 걸 이런 책을 읽으면서도 느낀다. 메갈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수면에 올라온 한국 페미니즘은 이제 같은 한남이 한남을 분석하는 책까지 나올 정도로 발전했다. 물론, 페미니즘 관련 서적은 아직도 인터넷 서점에서 별점 테러를 당하고 악성 댓글에 시달리지만 이런 책이 출간되고 소비된다는 것 자체가 눈부신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전문적이어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90년대 이후부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단순히 읽는 행위만으로도 조금은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정도로 자기 객관화가 잘 된 한국 남자가 있다니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한남이란 단어가 더는 욕이 아닌 대한민국, 수많은 여성 혐오 단어 또한 사라진 대한민국을 꿈꾸며 계속 공부하고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03. 섬에 있는 서점 / 개브리얼 제빈 / 루페 / E

앨리스섬의 작은 서점 '아일랜드 북스'의 주인 에이제이는 2년 전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홀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나이틀리 출판사의 영업 담당 아밀리아는 그의 서점을 찾아가 호기롭게 영업을 시도하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다. 그들은 4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되는데 4년 사이에 에이제이에게는 마야라는 예쁜 딸이 생겼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사랑스러운 마야 덕분인지 에이제이의 깐깐한 성격도 조금은 누그러지게 되고 4년 전 아밀리아가 놓고 간 책을 뒤늦게 읽고 감동한 그가 아밀리아에게 다시 연락하게 되면서 인연은 연인으로 그리고 가족으로 발전한다. 사랑, 희망, 이별, 슬픔, 행복, 후회 등 여러 감정을 맛볼 수 있는 소설로 모든 이야기의 배경엔 서점과 책이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요즘엔 우리나라에도 작은 동네서점이 많이 생기던데 우리 동네에는 서점의 ㅅ자도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중고 서점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이 동네 사람들은 책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재미없는 동네에 살고 있다.


04.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 러네이 엥겔른 / 웅진지식하우스 / E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외모 강박에 시달리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외모 강박을 이겨내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본문에도 잠깐 등장하지만, 한국은 외모 강박을 가진 여성들이 살기에 최악인 나라다. 남성에게 후하고 여성에게 박한 이 나라에선 똑같이 살이 쪄도 남성에겐 곰돌이 같다, 푸근하고 듬직하다 등의 올려치기가 적용되고 여성에겐 자기관리도 못 하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후려치기가 적용된다. XY가 벼슬인 나라다. 때문에 한국 남성은 한국 여성보다 훨씬 외모 강박으로부터 자유롭다. 한국에선 일반인, 연예인 할 것 없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놓고 외모 지적을 하고 뒤에서 자기들끼리 수군대며 깔보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이런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SNS의 영향으로 온라인에서까지 외모 강박과 외모 지적이 이어진다. 우리는 온종일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평가 받는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여성이 외모 강박 없이 성장한다는 건 거의 미션임파서블에 가깝다. 우리 6살 난 조카만 봐도 이미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며 여자는 치마, 분홍색, 예쁜 옷을 입고 외모를 꾸며야 한다는 걸 학습했으며 실제로 옷이나 외모에 신경 쓰고 있다. 반면, 11살 조카는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강박 없이 마음껏 뛰어놀고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는다. 사회 전체가 성 고정관념과 외모 강박을 자연스레 주입하고 있으며 분별력 없는 어린아이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갑자기 외모 강박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본인의 외모가 됐든 타인의 외모가 됐든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한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우리는 괴로운 것이다.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외모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모든 여성이 몸과 마음을 헤칠 만큼 스스로 괴롭히는 일만큼은 지양했으면 한다. 17년 10월에 사두고 이제서야 읽은 책인데 종이책으로 봤으면 더 집중할 수 있어 좋았을 것 같다. 중학생 이상의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