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하루의 취향 / 김민철 / 북라이프 / E.

처음 접한 '모든 요일의 기록'을 좋게 읽어서 그런지 이후에 출간되는 책을 다 읽고 있다. 이래서 첫인상이 중요한 모양이다. 이번 책에선 제목 그대로 취향에 관한 글을 만날 수 있다.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소소한 나만의 취향은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든다. 여전히 꾸밈없이 담백한 글이라 잘 읽히고, 읽는 동안 마음도 편안해진다. 다르게 보면 세 번 연속 비슷한 글이라 다소 식상한 면도 있다. 내겐 소장용까진 아니었다.


02.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 박민정 / 민음사

여덟 편의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한국의 병든 가족이다. 괜찮은 단편집이라는 소리에 혹해서 샀는데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릴 글이었다. 우울한 한국문학에 질린 지 오래인 나에겐 불호였다. 추천만 믿고 책을 사는 게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실수를 거듭하는 건 주변에 책을 실물로 볼만한 서점이 없어서이다. 서점 자체도 거의 없고 대도시가 아니면 다양한 책을 갖춘 서점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인터넷에 의지하게 된다. 물론, 서점까지 찾아갈 생각을 안 하는 게으른 내 탓도 크다.


03. 사망 추정 시각 / 사쿠 다쓰키 / 소담출판사

어느 날, 산길을 걷던 청년은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집어 든다. 그러다 산길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바닥에 누워있는 여자를 보게 된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낀 청년은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못 한 채 가방을 버리고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지역유지의 딸로 납치된 후 살해되어 산속에 버려진 상황이었고, 가방에 손을 댄 청년은 이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가 된다. 한순간에 용의자로 몰린 청년이 무죄를 증명할 방법은 무엇인가? 소설은 어떻게 무고한 사람이 용의자가 되고, 저지르지도 않은 죄에 대해 자백을 하고, 범죄자로 낙인찍히게 되는지 그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작가가 변호사 출신이라 그런지 수사와 재판 과정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었고 전체적으로 어색하거나 작위적인 부분이 없어서 좋았다. 소설이지만 다큐멘터리를 읽는 기분이었다. 전혀 기대 없이 읽은 책인데 뜻밖의 월척이었다.


04. 표현의 기술 / 유시민 / 생각의 길
이런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기술을 알아도 그걸 제대로 표현할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시무룩해진다. 천재는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반대로 하면 둔재는 아무리 좋은 도구를 사용해도 천재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는 뜻 아니던가. 유시민 작가의 책을 아무리 읽어도 나는 유시민 작가가 가진 재능이나 노력하는 자세가 없기 때문에 그의 발끝에도 미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 책을 계속 읽는 이유는 뭘까? 좀 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과 글 잘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이유야 어찌 됐든 읽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좀 더 나은 둔재가 되기 위해서라도 계속 읽어야겠다.


05.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 이도우 / 시공사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후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이도우 작가님의 로맨스 소설 신작이다. 가볍게 읽을만한 로맨스 소설이야 차고 넘치지만, 그중에서 취향에 맞는 글을 찾는 건 모래사장 속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취향에 맞지도 않는 글을 읽으려고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각설하고, 전작에선 라디오 부스와 음악이 사랑의 매개체였다면 이번 작품에선 시골 책방과 책이 그 자리를 대신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온 은섭과 해원이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어 같은 색으로 물드는 과정은 너무나 따뜻하고 애틋했다. 은섭과 해원의 사랑은 밤새 조용히 내려 묵직하게 쌓인 눈송이 같았다. 해원의 예감이 맞은 것이다. 봄이 되면 차가운 눈은 녹겠지만 둘의 사랑은 더 따스해질 것이다.


06. 오늘만 사랑한다는 거짓말 / 남궁현 / 파란 / E.
'이자온'은 의대 휴학생으로 낮에는 헌책방, 밤에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자온은 왼손 가운뎃손가락에 반지를 부적처럼 끼고 유부녀 행세 한다. 이자온의 첫사랑인 '지건영'은 잘 나가는 고액 연봉 변호사에 외모까지 잘난 남자다. 헌책방에서 새롭게 만난 남자 '최운'은 광고 아트디렉터이자 네이미스트이며 문학과 영화를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진행 중이다. 사랑은 타이밍, 사랑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친 자온과 건영, 그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자온과 운. 꽉 닫힌 해피엔딩이 마음에 들었고 운의 팟캐스트 '비 오는 날의 초대'를 글로 읽는 것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