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탈리아 풍경, 나른하고 몽환적인 수프얀 스티븐스의 음악, 엘리오 역의 티모시 샬라메까지 그야말로 분위기 깡패, 분위기가 전부인 영화였다. 아쉬웠던 건 엘리오의 감정은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지지만 올리버의 감정은 내내 물음표 상태였다는 거다. 4시간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올리버의 감정선이 많이 잘려나간 것도 같고 배우의 연기력 부족도 한몫한듯 싶다. 아미 해머는 외모나 목소리는 완벽한데, 연기에 감정이 보이질 않는다.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의 특징이 몸을 잘 쓴다는 건데 이 배우님은 몸 쓰는 것도 한없이 어색하다. 춤추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숙연하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다면 올리버와 엘리오의 감정을 좀 더 가까이 느꼈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 이렇게 써놨는데 어느 똑똑한 분의 리뷰에서 이 영화 자체가 '엘리오의 기억'이라는 글을 읽었다. 영화 전체가 엘리오의 기억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떠올려보니 그제서야 퍼즐이 제자리에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내가 무서워하는 건 귀신이 아니라 현실 속 인간이기 때문에 귀신 나오는 공포 영화는 잘 보는 편이다. 인형과 악령 나부랭이가 나오는 서양 공포 영화는 공포라는 생각도 안 들고, 예전에 무섭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주온' 비디오 판은 고생하는 귀신들 때문에 깔깔 웃으며 봤고, '셔터'는 쓰레기 구남친과 그 친구들 욕하다 보니 끝나있었다. 그나마 괜찮게 본 공포영화는 '알포인트'와 '기담'이다. 전자는 심리적인 공포라서 좋았고, 후자는 왜색이 짙어서 짜증 나긴 했는데 엄마 귀신님이 일당백을 해주셨다. 그래서 감독의 신작이라는 이 영화도 보러 간 건데 결론은 실망스러웠다. 초반 친목 다지는 부분은 아예 없는 게 나았을 것 같고, 한 시간 정도 지루하다가 후반에 몰아치기는 하는데 안 무섭다. 귀신 비주얼이 무섭다기보단 징그럽고 일차원적이었다. 귀신보단 대장이란 놈이 짜증 나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좋았던 건 신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 점이다. 한국 영화는 뭘 봐도 배우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 질리는데 새로운 얼굴의 배우들과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