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리베카 솔닛
「맨스플레인(mansplain)은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을 결합한 단어로, 대체로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애틀랜틱》의 릴리 로스먼은 맨스플레인을 "흔히 남자가 여자에게, 설명을 듣는 사람이 설명을 하는 사람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정의하였고, 레베카 솔닛은 일부 남성의 "과잉 확신과 무지함"의 결합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속한다고 보았다.」이상은 위키백과에 실린 맨스플레인의 정의다. 이런 단어가 만들어지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사용하게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본문은 신조어 '멘스플레인'의 발단이 된 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비롯해 9편의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뭔가 불편하지만 딱 꼬집어 어디가 불편한지 말할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 책을 읽고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읽은 보람이 있는 책이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좋았지만 번역의 문제인지 이해력의 문제인지 문장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고, 초반의 집중력이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 부분도 상당히 지루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여성혐오는 마치 공기와 같다. 가깝게는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로 시작해서 친구, 선생님, 직장동료와 상사, 심지어는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존중 받아야 할 인격체가 아닌 성적인 대상 내지는 남성의 소유물이며 맨스플레인의 대상이다. 오랜시간 사회에서 힘과 권력의 우위를 점령한 남성은 여성을 언어로 후려치고, 권력을 이용해 경력을 차단하고, 힘으로 폭행하고 살해한다. 모든 남성이 가해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남성이 가해자고, 모든 여성이 피해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여성이 피해자다.
우리 모두가 리베카 솔닛이 될수는 없지만 여성인권 문제에 대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자들은 아직도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그리고 내가 알고 그들은 모르는 일에 대해서 내게 잘못된 설명을 늘어놓은 데 대해 사과한 남자는 아직까지 한명도 없었다. 아직까진 없었지만, 보험 통계에 따르면 나는 앞으로도 사십몇년쯤 더 살 가능성이 높으니 미래에는 그런 남자가 생길지도 모른다. 별로 크게 기대하진 않지만. - P.21
프로이트주의자라면 아마 이 대목에서 그 남자들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이 뭔지 안다고 주장하고 나설 테지만, 지성은 가랑이 사이에 있는 게 아니다. 당신이 설령 여성이 겪는 교묘한 예속에 관한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유려하고 음악적인 문장들을 당신의 자지로 눈위에 써내려갈 수 있다 해도 말이다. - P.23
강사는 학생들에게 스스로를 강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조치들을 취하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젊은 여학생들은 자신이 늘 교묘한 방식으로 경계하고, 세상에 대해 접근을 제한하고, 사전에 조심하며, 기본적으로 아주 자주 강간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했다(내게 글을 쓴 남자가 덧붙이기를, 남학생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세상을 가르는 간극이 일순간이나마 갑자기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 P.50~51
살인 뉴스가 보도되었을 때, 디지털 세상이 그 의미를 흡수하고 토론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편집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어 며칠 쉬게 해달라고 요처할 참이었다. 나는 유별나게 끔찍한 강간 협박들을 받은 충격으로 부들부들 떨렸고,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시간을 갖는 대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분노와 슬픔에 잠겨서 쓰고 있다. 이 분노와 슬픔은 아일라비스타 학살 피해자들에 대해서만 느끼는 게 아니다. 새로운 여성 혐오의 언어와 이데올로기가 계속 용인되는 바람에 우리가 모든 장소에서 잃어가는 기회들에 대해서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나는 피해자와 생존자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때마다 폭력을 저지른 자에게도 공감해보라는 주문을 받는 것이 이제 진저리가 난다. - P.185
강간문화란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말한다. 강간문화는 여성 혐오 언어의 사용,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선, 성폭력을 미화하는 태도를 통해서 지속되며, 그럼으로써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경시하는 사회를 낳는다. 강간문화는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는 강간을 염려하여 자신의 행동을 제약한다. 대부분의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는 강간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따라서 강간은 여성 인구 전체가 남성 인구 전체에게 종속된 위치에 머물도록 만드는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강간을 저지르지 않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강간 피해자가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 P.191
여기 그 길이 있다. 천 마일은 될지도 모르는 기나긴 길이다. 이 길을 가는 여성은 채 1마일도 걷지 못했다. 그녀가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되돌아오진 않으리란 것은 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걷지 않는다. 수많은 남자, 여자 들, 그보다 더 흥미로운 다양한 젠더의 사람들이 함께할지 모른다. 여기 판도라가 손에 들었던 상자와 지니가 풀려난 호리병이 있다. 지금 그것들은 감옥과 관처럼 보인다. 이 전쟁에서 사람들은 죽을지언정, 생각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