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야가미는 험악한 인상만큼이나 험악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범죄에 물든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자 한 가지 선행을 실천하려 한다. 그 선행이란 건 백혈병 골수 이식 기증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골수 이식 수술을 고작 이틀 앞두고 살인 사건 용의자가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야가미는 병원을 향해, 경찰과 의문의 집단은 야가미를 향해 24시간 동안 숨 막히게 달린다. 소설은 그 추격전에 대한 기록이다.

앞서 읽은 <13계단>이나 <제노사이드>가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었다면 이 소설은 철저히 재미만을 위한 글로 읽혔다. 이처럼 단시간 내에 사건의 기승전결이 모두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보는 사람까지 초조하고 긴장하게 하지만 그만큼 몰입도가 높고 재미있다. 이런 유의 작품 하면 대표적으로 미드 <24>가 떠오르는데 앞 시즌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기억이 난다. 뒤로 갈수록 비슷하고 허무맹랑한 내용에 질려서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그레이브 디거'는 작가가 창작해낸 것이라는데 실제 중세 시대에 있었을 법한 굉장히 그럴듯한 전설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껏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 본 적도 없는 야가미는 왜 갑자기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선행을 하려 했을까?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자면 야가미는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했다. 그러려면 자신을 바꿀만한 계기가 필요했을 테고 그 계기가 골수 이식으로 이어졌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선행이었기에 마지막까지 기를 쓰고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평소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이라면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야가미는 범죄를 저지르며 살았지만 뿌리까지 악인은 아니어서 밉지 않았다.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요령 좋게 도망가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야가미가 절대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준 경찰이나 전화로나마 야가미가 병원으로 올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여의사도 고마웠다. 분명한 악이 존재하는 이야기였지만 그 중심에 선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인 소설이었다.


"이전부터 궁금했는데, 어쩌다 골수 기증에 지원을 했어요?" "이런 악당 같은 얼굴에는 안 어울리나?" "그런 게 아니라. 야가미 씨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봐요." 뜻밖의 말에 야가미는 휴대전화를 다시 쥐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그래요. 나쁜 놈처럼 생긴 사람은요, 양심의 갈등 때문에 나쁜 얼굴이 되는 거예요. 양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진짜 악당은 실은 평범하게 생긴 법이죠." -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