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보다 진화한 새로운 생물'의 출현과 그에 대처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현인류의 존재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초인류를 말살하고자 하는 강대국과 그 말살임무에 선택된 용병들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불치병 신약을 개발하고자 목숨을 걸고 동분서주하는 일본 대학원생이 중심이 되어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외계인의 존재 여부는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지금의 인류, 지금의 나보다 월등한 지능을 가진 진화된 인류의 등장은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소설처럼 외적, 내적으로 급격한 진화를 이룬 초인류의 모습은 솔직히 공감할 수 없지만 현인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인류가 새롭게 등장한다면 소설이 더는 소설이 아니게 될 건 분명하다.

전쟁 중의 제노사이드라는 것도 생각해보게 됐다. 전쟁만큼 인간의 추악함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좀 더 좋은 것을 좀 더 많이 좀 더 쉽고 좀 더 편하게 차지하고자 하는 욕심을 전쟁이란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전쟁도 제노사이드도 모두 강대국 권력자들의 손끝에 달린 일이라는 것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다수의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 위에는 언제나 소수의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군림하고 있다.

<제노사이드>는 기획 25년, 집필 6년이 걸린 소설이다. <13계단>이 재미있지만 조금 아쉬운 느낌이었다면 <제노사이드>는 빈틈없이 알갱이가 꽉 들어찬 느낌이다. 아귀가 딱딱 맞는 퍼즐처럼 버릴 것도 채울 것도 없다. 더불어 다카노 가즈아키가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진 작가라는 걸 확인하게 되어 마냥 흐뭇한 기분이었다. 일본처럼 보수적인 국가의 유명 작가가 바른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제노사이드'를 작품에서 그리면서 일본인의 과거만 눈감는다는 것은 크나큰 모순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에 소신을 갖고 공정성을 잃지 않는 자세가 멋진 작가다.


루벤스가 보기에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경쟁의 원동력은 단 두 가지 욕망으로 환원되는 듯했다. 식욕과 성욕. 인간은 타인보다 많이 먹거나 혹은 저장하고, 보다 매력적인 이성을 획득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고 발로 차서 떨어뜨리려 했다. 짐승의 본성을 유지한 인간일수록 공갈이나 협박 같은 수단을 쓰며 '조직'이란 무리의 보스로 올라가려 안달했다.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 경쟁이야말로 이러한 폭력성을 경제활동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교묘한 시스템이었다. 법으로 규제하고 복지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가 내포하는 짐승의 욕망을 억누르기는 불가능했다.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 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