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가 어린 시절부터 맛본 각종 먹거리에 대한 첫 느낌을 정리한 책이다.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경우는 모르는 제품이 많았지만, 만화가 곁들여 있어서 어느 정도는 맛과 생김새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런 글 위주인 에세이도 나쁘진 않지만 마스다 미리 하면 역시 4컷 만화이지 싶다.

저자처럼 개인적인 최초의 한입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엔 기억력이 따라주질 않으니 내 나름의 음식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나는 어린 시절엔 먹을 것만 주면 울지도 않고 아주 순했다고 한다.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진 통통했고 점점 키가 크면서 입맛도 까다로워지기 시작한다. 중학교 땐 과자 죠리퐁에 빠져서 하루에 3봉지씩 먹어치우기도 했고 이후엔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늘 맛 나는 과자에 한동안 빠져서 그것만 먹기도 했다. 한 가지에 빠지면 정신 못 차리는 기질은 타고난듯하다.

기본적으로 밥과 한식, 해산물, 과일, 채소를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기름기가 있거나 너무 달거나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은 취향이 아니며 술은 마시지 않는다. 김치,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한국인 입맛의 소유자. 빵은 밥이 아닌 간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직장을 다니다 보니 빵으로 한 끼를 때우는 경우가 많아져서 이젠 빵도 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돈을 벌기 전까진 먹는 데 쓰는 돈이 가장 아까웠지만, 지금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는 아까워하지 않게 됐다. 물론 값이 비싼데 양이 새 모이만큼이라던가 내가 만든 것보다 맛이 없으면 욕 나올 정도로 아깝다. 아무리 맛있어도 줄 서서 기다려 먹는 건 싫다. 미식가가 되긴 애초에 글렀지 싶다.

아침은 안 먹거나 우유에 블랙 선식을 타 먹고 점심은 회사에서 아무거나 먹고 저녁은 집 밥을 먹는 게 일반적인 식사 패턴이다. 밖에서는 잘 안 먹는 습관 때문에 회사에서는 군것질을 안 하고 집에서 저녁때 과일이나 과자를 먹기도 한다. 사실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어서 음식에 대해선 아는 것도 말할 것도 별로 없다.

만약 한국인 작가가 같은 소재로 글을 썼다면 공감과 함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까지 불러일으켰을 텐데 일본 작가여서 그런지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는 글이 많았다. 우리와 아주 다른 기후와 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면 호기심이라도 생겼을 텐데 비슷한 점이 많은 일본이다 보니 뜨뜻미지근하고 싱거운 반응 밖엔 나오질 않음이 아쉽다.


나는 뜯어 쓰는 캡슐 형태의 작은 액상 프림을 넣었다. 하나하나의 작업이 어른스럽게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설탕 시럽을 잔뜩 넣었기 때문에 하나도 쓰지 않고 달달한 맛이 났지만, 어른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내 모습에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빨강머리 앤에서 앤이 친구 다이애나를 오후의 차 모임에 초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앤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앤이 어른들의 방식대로 친구와 차를 마시기를 동경했듯이 나 역시 커피를 마시는 어른의 분위기를 여전히 사랑한다. - P.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