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별 - 도진기

2014. 9. 24. 22:15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를 처음 접한 게 3년 전이었는데 그때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챙겨 보고 있다. 이번 <유다의 별>은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로 백백교(白白敎)라는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삼고 있다. 백백교는 1930년대 종말론을 내세워 세력을 확장한 종교로 살인, 강간 등 온갖 흉악범죄를 저질러 세간을 경악게 했다. 백백교는 교주 전용해가 산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70년 전 없어진 종교와 연쇄 살인사건 그리고 정체불명의 광목 끈이 가리키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 진실을 향해 어둠의 변호사 고진과 열혈형사 이유현이 다시 한 번 달린다.

추리 소설은 재미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가 재미를 전제로 하고 추리 소설을 읽는다. 추리 소설의 재미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트릭과 반전일 것이다. 생각 없이 지나쳤던 사소한 부분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엄청난 단서가 되고, 상상 조차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트릭이 풀리는 것에 독자들은 열광한다. 반대로 너무나 뻔한 트릭이나 반전은 소설 자체를 그저 그런 추리 소설로 만들어 버린다. 이 소설에선 백백교의 보물과 김성노, 화미령의 정체가 그 뻔함에 해당한다. 아침 드라마만큼이나 식상하고 재미없다. 백백교가 저지른 살인의 트릭을 그림까지 곁들여 설명하는 부분들은 상당히 좋았지만, 후반부의 뻔함에 다 묻혀버렸다.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재도 좋았고 전반적으로 재미도 있었는데 끝내야 할 부분에서 끝내지 못하고 좀 더 나아간 것이 독이 된 소설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신자들을 이용하고 끝내는 쓰레기처럼 버려버리는 백백교의 교주를 보면서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나는 신의 존재도 종교도 믿지 않지만 요즘 세상엔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것보다 보이는 사람을 믿는 것이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신의 이름을 빌려 종교로 장사하는 사람도 문제고 자신을 신격화하여 신자들을 세뇌시키는 사이비 종교도 문제다. 저런 사기꾼에게 빠지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상생활에서 상처받고 기댈 곳이 없어 마음이 약해진 상태일 텐데 그걸 역으로 이용한다니 지구 상에 사람보다 악한 존재는 없는 게 분명하다.


"엄석대하곤 좀 달라요. 엄석대는 폭력을 동원해서 아이들을 굴복시켰지만 용해운이는 폭력에 기댄 게 아니었어요. 그러니 더 골치가 아픈 거죠. 단순한 폭력이라면 선생이 꺾어 버릴 수도 있어요. 소설에서처럼요. 하지만 용해운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장악했죠. 그러니 거미줄처럼 쉽게 걷어낼 수가 없는 겁니다. 실질적으로는 아이들을 조종하면서 정작 거부감은 갖지 않게끔 하는 탁월한 재주가 녀석에겐 있었던 거죠. 공부로 발휘되진 않았지만 정말 머리가 비상한 녀석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제 기억으론 일찍 입학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도 한 살 더 어렸을 겁니다. 학생을 상대로 할 말은 아니지만, 한 번씩 배알이 터질 땐 저런 놈이 커서 피라미드 사기꾼이 되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나중엔 좀 더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건 작은 학급에 불과하지만 만약 저 아이가 나중에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갖게 된다면? 하고요. 눈에 보이는 거악(巨惡)은 싸울 수나 있죠. 하지만 '선(善)'의 얼굴을 하고 사람들의 뇌리에 들어앉아 그들을 조종해 수렁으로 이끈다면? 안 그래도 어떤 종류든 한번 바람이 일면 삽시간에 '광풍'이 되어 버리는 게 조그만 우리나라 사회 아닙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거죠." - P.7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