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 요코야마 히데오

2014. 7. 30. 22:06



D현경 홍보부 홍보담당관 미카미를 중심으로 경찰 내부 세력 간의 갈등과 고뇌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평소에도 골이 깊었던 홍보부와 형사부, 경찰과 언론, 캐리어와 논 캐리어의 갈등이 경찰청장 시찰을 계기로 폭발 직전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치밀한 내용 전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압박감과 긴장감이 대단한 소설이다.

저자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길 자신이 소설을 쓸 때 기본적으로 취하는 자세는 등장인물에게 강한 압박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읽는 내가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프고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었으니 대단한 압박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소설 속 미카미였다면 진작에 사표를 내던졌거나 스트레스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을 것이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낸 미카미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오래전에 읽었던 <클라이머즈 하이>에선 지역신문사 기자들의 전쟁 같은 보도 현장을 생생하게 전했었는데, <64>에선 그 생생함이 경찰 내부로 이어진다. 언론과의 싸움도 꽤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중점이 되는 건 경찰 내부다. 저자가 전직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어떤 '조직'에 대한 특히, 언론과 경찰 조직에 대한 정보와 이해도가 높아서 글로 전해지는 현장감이 숨 막힐 정도다.

오래 묵힌 장이 맛이 좋은 것처럼 오랜 시간 구상하고 퇴고하고 심사숙고해서 내놓은 글은 대부분 완성도도 높고 저자와 독자의 만족도도 높은편이다. 언젠가부터 일본 소설은 가볍고, 쉽게 읽히지만 남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부러 피했었는데 이런 편협한 생각을 간단하게 깨준 소설이다. 얕은 지식만으로 전체를 속단하지 말아야겠다. 

내용만큼이나 묵직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 피로가 밀려왔다. 그리고 주인공 미카미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어졌다. 저항 의지조차 없는 상대를 코너로 몰아세우고 펀치를 퍼붓는듯한 압박과 긴장을 버텨낸 그는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주인공을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다니 요코야마 히데오 독하다. 마지막으로 이건 진심으로 덧붙이는 말인데 스트레스와 긴장에 약한 분들에겐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높은 완성도만큼이나 독자가 견뎌야 할 무게 또한 무겁다.


마음이 울렁였다. 아카마의 말에 새로운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 아라키다의 말도 아스라하게 느껴졌다. 그 어느 길도 택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에 정의나 불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찰 개개인이 맡은 자리는 엄연히 존재한다. 파출소에는 파출소의, 형사에게는 형사의, 홍보실에는 홍보실의 정의와 불의가 존재한다. - P.438

경찰뿐 아니라 조직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사람과 돈을 쥔 이가 정상에 선다. - P.109

조직에서 이기는 건 그런 이들이다. 비밀을 흘리지 않고 오롯이 가슴에 품은 이들이 살아남는다. 자신의 비밀을, 남의 비밀을 입 밖에 낼 때마다 패배를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 P.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