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와 중빈이의 여행기는 읽을 때마다 각기 다른 국적만큼이나 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겁다. 그들의 모든 만남이 유쾌하진 않지만 모든 만남은 가치 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부터 벽을 세우고 그 안에 숨어 가끔 벽을 넘어들어오는 사람에게만 손을 내미는 나는 애초부터 벽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중빈이가 많이도 부럽다. 열 살 꼬마 중빈이에게 나이, 성별, 인종 따윈 중요하지 않다. 함께 웃고 떠들며 놀 수 있다면 모두 친구가 된다. 내적으로는 서른 넘은 나보다 열 살 중빈이가 더 성숙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1등을 외치기 시작하는 숨 막히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중빈이의 부모처럼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주 드물 것이다. 공부를 잘해서 1등을 하는 것보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말해주고 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진정한 역할이겠지만 아직도 학연, 지연, 혈연을 중요시하는 이 나라에선 이런 말은 이상적인 답안에 불과하다.

소희와 중빈이의 여행기 끝엔 항상 사람이 남는다.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색으로 기억 속에 칠해진다.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따뜻한 기후에 속한 나라 사람들은 성격도 날씨를 닮아 온화하고 느긋하다. 그들은 연한 병아리색을 닮았다. 가끔은 목숨까지 위협받을 만큼 서늘한 어두운 빛깔을 만나기도 하지만 다행히 큰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 정열적으로 타오르는 붉은색을 만날 때도 있고, 매사에 불평을 쏟아내는 뿌연 회색빛일 때도 있고,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파란색일 때도,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색을 만나기도 한다. 6개국을 여행한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뿜어내는 다양한 빛깔에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 그리고 나라마다 인상적인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잠깐씩 소개하고 있는데 남미 역사에 대해선 무지한지라 그 부분이 상당히 유익하고 재밌기도 해서 좋았다. 남미 역사를 소개하면서 인용됐던 (그 유명한 '총·균·쇠'나 사두고 묵혀두고만 있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던가) 책들도 읽고 싶어졌다.

책 속에서 자라는 중빈이는 이제 열 살이고 친구 같은 엄마 소희와 함께 남아메리카 6개국을 여행했다. 소희와 중빈이의 사람 여행도 중빈이가 책 속에서 커가는 모습도 계속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미에 살고 있는 한 한국인은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려주었다. "이곳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몇 년 전만해도 세계 1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4, 5위 정도로 떨어졌다고 해요. 현지인들이 그 이유를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여기 삼성이 들어왔기 때문이랍니다." 껄껄 웃긴 했지만 못내 씁쓸했다.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남의 나라에서 행복지수를 떨어뜨릴 정도라면, 과연 한국의 행복지수는 얼마일까? -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 P.305

그들은 무장한 경찰병력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몇 겹씩 건물을 에워싸며 "코레아를 내놓으라!"고 외쳤다고 한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우리에게도 그토록 사랑했던 대통령이 있었던가? 흡사하게 사랑했던 단 한 명의 대통령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그가 있는 곳을 몇 겹으로 에워싸고 지켰더라면, 그의 마지막은 달라졌을까?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P.246~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