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지침서 - 쑤퉁

2014. 1. 25. 23:09



지난해 <쌀>과 <나, 제왕의 생애>로 강한 첫인상을 남긴 중국 작가 쑤퉁. 그의 다른 글이 궁금해서 잡아 든 <이혼지침서>는 세 편의 소설이 묶여있는 중편소설집이다. 첫 번째 단편 '처첩성군'은 천 씨 가문 처첩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린 나이에 천 씨 가문 세 번째 첩으로 들어가게 된 쑹렌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외모와 성격을 가진 처첩의 일상을 신랄하게 풀어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일처다첩제인 축첩제도는 과거 우리나라에도 있었고, 가깝게는 중국과 일본에도 있던 제도인데 가부장 권한이 강력했던 과거 가족 제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몰락한 자신의 집에서 벗어나고자 돈 많고 첩 많고 나이 또한 많은 부자의 첩이 된 여자의 일생이 장밋빛일 수만은 없는 일. 처첩제도는 물론 천 씨 가문 전체의 화장기 하나 없는 민얼굴을 보는 듯한 글이었다. 쑤퉁의 글은 꾸밈이 없고 주로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어서 그런지 소설임에도 묘하게 현실성이 느껴진다. 꾸밈없이 신랄한 문장 속에 웃음과 해학이 묻어나는 글은 여전히 매력 있었지만 이번에 읽은 중편소설집에선 '처첩성군'을 제외하곤 크게 와 닿는 것이 없어서 아쉬웠다.


쑹렌은 한참을 주저하다가 현관 앞에 등나무 의자를 옮기고 앉아 페이푸의 퉁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후, 퉁소소리가 잦아들고 모여 있던 남자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쑹렌은 단박에 흥미가 식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말이란 얼마나 무료한 것인가. 그건 역시 너가 나를, 내가 너를 속이는 게 아닌가. 사람이 입을 열면 바로 가식적으로 변한다. - P.44

"사람은 다 똑같아요. 자신의 희로애락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죠." - P.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