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아무런 흔적도 없이 딸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사라진다. 가족의 생사도 알 수 없고 왜 혼자만 남겨졌는지도 알 수 없다. 겨우 열다섯 소녀였던 '신시아'는 하루아침에 홀로 남겨져 이모 테스와 함께 살아간다. 시간이 흘러 신시아에게도 새로운 가족이 생기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족 실종 사건은 신시아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본인은 물론 남편과 딸까지도 괴롭히게 된다. 25년을 괴롭혀온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TV 방송까지 출연하지만, 그마저도 큰 소득 없이 끝나버린다. 하지만 신시아 가족이 알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점점 사건의 진상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작가는 사건의 당사자 신시아가 아닌 남편에게 화자의 역할을 맡김으로써 사건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전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게 만들고 있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비하면 사건의 진상은 의외로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한 것을 단순하지 않게 보이게 하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 밀고 당기기를 잘한다는 느낌이랄까. 중간중간 등장하는 정체 모를 남녀의 대화도 그렇고 계속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피해자인 신시아마저 의심하게 하기도 한다. 의문과 의심을 일으킬만한 요소를 적시적지에 배치해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상당히 영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신시아 부부를 보면서 떠오른 한 쌍의 부부가 있었으니 바로 미드 <미디엄>의 드부아 부부다. 양쪽 모두 아내 쪽에 문제가 있고 남편은 한없이 자상하고 이해심 넓고 헌신적인 타입인데 어쩔 땐 저런 아내에게 저런 남편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드 MMFD가 연애 판타지라면 조 드부아나 테리같은 남자는 남편 판타지 정도 될 듯싶다.


아무개에게. 이건 아무개가 아무개에게 보내는 편지야. 이름은 필요없어. 어쨌든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이름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세계는 타인들로 이루어져 있어. 수백만 명의 타인들. 모두들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야. 가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안다고 생각하지. 특히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하지만 정말 그 사람들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니든 왜 놀라는 거야? …… 인생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묻는거야.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참 동안 아무 일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끝장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잘있어, 아무개야. - P.20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