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느낌의 소설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산 뒤 책장에 묵혀 두고 있었는데 나중에서야 덴마크 소설이라는 걸 알아채고 읽기 시작했다. 덴마크가 너랑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매즈 미켈슨이 덴마크 사람이기 때문에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면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에 눈길이 가기 마련 아니던가. 이 소설도 그렇게 읽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론 덴마크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심어졌다.

덴마크인 아버지와 그린란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스밀라는 어린 시절 그린란드에서 자라면서 눈과 얼음에 대한 감각을 터득한다. 스밀라는 눈처럼 차갑지만, 얼음처럼 강인하다. 나는 주인공 스밀라가 피동적이 아닌 주동적인 사람이라서 좋았다. 특히, 남자에게 끌려다니는 타입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이끌어 가는 타입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스밀라는 강인하고 독립적이고 그 때문에 아름답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이에게만 그 아름다운 결정을 보여주는 눈과 닮았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간단하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 소년이 지붕 위에서 떨어져 죽는다. 모두 단순한 실족사라고 단정하지만 스밀라는 소년의 고소공포증을 알고 있었기에 죽음에 의문을 갖고 진상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스밀라가 온몸으로 부딪혀 밝혀내는 진실의 끝엔 더러운 인간의 욕심만이 남는다.

큰 줄기는 단순하지만, 줄기에서 퍼저 나가는 부수적인 가지들은 그렇지 않아서 쉼 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소설은 아니었다. 문장마저 스밀라를 닮아 차갑고 딱딱하다. 그렇지만 스밀라가 보여주는 눈과 얼음의 세계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른일곱의 독신 여성이자 눈과 얼음, 수학을 사랑하는 스밀라가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책을 읽고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관계가 궁금해서 검색해보다가 알게 된 건데 얼음뿐인 땅의 이름이 왜 '그린란드'인가 했더니, 노르만족이 그린란드를 발견할 시점엔 말 그대로 초지가 있었고 기온도 따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간은 짧았고 이후엔 지금의 눈과 얼음뿐인 땅이 되었다고 한다. 얼음 땅에 이주민들을 모으기 위해 그린란드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설은 잘못 알려진 정보라고 한다. 그 연유는 차치하고 얼음으로 덮인 땅의 이름이 '그린란드'이고 초목이 우거진 땅의 이름이 '아이슬란드'라니 재밌기는 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울을 덮어버리려 할 수 있다. 구세주 교회에서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들을 수도 있다. 마약 가루라는 형태로 된 즐거운 기분 한 가닥을 면도날 달린 손거울에 담아 빨대로 마실 수도 있다.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전화를 걸어 누가 귀를 기울여줄지 알아보는 것이다. 이런 건 유럽식 방법이다. 행동을 통해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나는 그린란드식 방법을 취한다. 그것은 어두운 분위기에 침잠하는 방식이다. 내 패배를 현미경 아래에 올려놓고 그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지금처럼 상황이 정말로 나쁠 때는 나는 내 앞에 뻗어 있는 검은 터널을 그려본다. 나는 그쪽으로 향한다. 제일 좋은 옷을 벗고, 속옷을 벗고, 안전모를 벗고, 덴마크 여권을 버린 뒤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