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아이 - 공선옥외

2013. 8. 11. 13:16



창비 청소년 문학 50권의 주인공 <파란 아이> 일곱 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각기 다른 일곱 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다. 나는 이미 청소년과는 거리가 먼 나이가 됐지만, 창비에서 나온 청소년 소설들을 좋아한다. 십 대, 청소년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성이 묻어 있어서 사랑스럽다. 물론 사랑스럽지 않은 녀석들도 가끔 튀어나오지만 대체로 사랑스럽다.

이번 창작 단편집을 기획할 때 주제를 '중학생'으로 정하고 작가들에게 '중학생을 위한 소설'을 써오라는 숙제를 안겨줬다고 한다. 그렇게 완성된 일곱 편의 단편 중에서 내 나름의 베스트를 꼽아 보자면 김려령의 <파란 아이>, 배명훈의 <푸른파 피망>, 이현의 <고양이의 날>정도가 되겠다. 구병모 작가 글도 좋아하는데 <성냥팔이 소녀>를 재해석한 <화갑소녀전>은 현실적이고 우울해서 베스트에선 제외했다. 새롭게 알게 된 배명훈, 이현 작가의 장편도 읽어보고 싶다.

<파란 아이>는 약간 오싹하기도 하지만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오르는 아련함이 있어서 좋았다. 김려령 작가의 글은 나와 잘 맞는다. <푸른파 피망>은 먼 미래 우주 '푸른파'라는 행성에서 모여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 기발하고 유쾌했다. 한 가지 음식만 먹는 건 못할 짓이며 이웃끼리 싸우지 말고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이야기였다. <고양이의 날>은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된 잿빛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미 고양이와 잿빛 고양이 말고 '고양이의 눈'을 잃어버린 하얀 고양이도 등장하는데 언제까지고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네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유독 한국 사회에선 자녀가 부모로부터 정신적, 물질적으로 독립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갈등도 더 많은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강요되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책표지엔 관심 없는 편인데 이 책은 색감이나 일러스트, 책 제목까지 조화롭고 예쁘다.


육즙이, 그전에는 그냥 아무렇게나 입속을 떠돌다가 식도를 지나 위로 내려가 버렸던 그 윱즙이, 푸른색 채소의 과즙을 만나 새로운 경지로 승화되고 있었다. 육즙은 더 육즙다워지고 과즙은 더 과즙다워지면서도, 둘이 만나는 지점 그 어딘가에서는 전혀 다른 이름을 붙여 줘야만 할 것 같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즙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입자 가속기에서 희귀한 입자가 만들어지듯이, 완전하고 성스럽고 거룩하기까지 한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 P.111

"하얀 고양이가 돌아오려면 며칠 걸릴 테니, 그동안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도록 해. 난 다만 떠나기 전에 너에게 고양이의 눈을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야. 그것으로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준 거다. 결정은 네가 해야지.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잊지 마라. 넌, 고양이다." -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