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하면 에세이, 에세이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소설은 읽을 때마다 좌절과 혼란만이 가득하지만 에세이는 일상의 쉼표가 되어주는 느낌이어서 참 좋다. 그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보는데 이번에 발견한 건 말이 없다는 거다. 사회 생활하면서 꼭 필요할 때는 영혼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평소의 나는 타인과 할 말도 없고 생각을 조리 있게 말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글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수 있지만, 말이란 건 한 번 뱉으면 끝이라서 순발력과 센스가 필요한데 난 그 부분이 결여된 인간인 것 같다. 하루키처럼 혼자 책 읽고 음악 듣고 영화관 가서 영화 보고 뒹굴 거리며 노는 것이 가장 편하고 행복하다. 누군가와 말을 섞지 않아도 누군가 옆에 있지 않아도 그다지 외롭거나 괴롭지 않다.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지만 아직은 그렇다. 이번 에세이는 다 읽고 나니 샐러드가 무지하게 먹고 싶어졌다. soup or salad 말고 super salad! 커다란 볼에 신선한 풀만 잔뜩 담아서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읽으면 좋을 책이다.


분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잘 풀리면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모르는 것을 '자랑'하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인생이란 꽤 복잡하다. - P.63

나이 먹는 것을 여러 가지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보는가, 혹은 여러 가지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보는가에 따라 인생의 퀄리티는 한참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뭔가 좀 건방진 소리 같지만. -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