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권 합쳐 2,039 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 덕에 읽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왜 이렇게 분량이 많은가 싶었는데 9년간 연재됐던 글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라고 한다. 소설의 결말을 아는 데 9년이 걸렸다니! 9년 동안 소설을 쓴 작가도 (미리 다 써놨을지도 모르지만), 연재한 출판사도, 그걸 읽은 독자도 모두 대단하다 싶다.

폭설이 내린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 조토 제3중학교에서 학생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망자는 제3중학교 학생 2학년 A반 가시와기 타쿠야.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11월부터 등교 거부를 해왔던 점과 최근 우울해했다는 부모의 증언까지 있어 부모, 학교, 경찰 모두 가시와기 타쿠야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결론을 뒤흔들만한 살해 현장 목격 증언을 담은 익명의 고발장이 학교장, 2학년 A반 담임 모리우치 에미코, 2학년 A반 반장 후지노 료코에게 도착하게 되면서 가시와기 타쿠야의 죽음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천 장이 넘는 종이 안에 학교 폭력, 청소년 자살, 청소년 우울증, 집단 따돌림, 가정 내 문제, 타인을 향한 이유 없는 악의 등 현대 사회의 병폐라 불리는 많은 문제가 담겨있다. 초점은 중학생 소년의 추락사에 잡혀있지만, 작가는 초점을 벗어난 이야기에도 한 번씩 손을 뻗어 어루만져준다. 그래서 결말까지 다다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난 작가의 이런 따스한 손길을 좋아하는 독자라서 그 손길을 따라 느릿느릿 결말까지 함께 가는 길이 즐거웠다. 하지만 사설이 긴 글을 싫어하는 독자라면 꽤 지루하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 최고의 볼거리는 단연 교내재판이다. 2학년 A반 반장 후지노 료코가 중심이 되어 가시와기 타쿠야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벌이는 학생들만의 교내재판. 처음부터 승패와 결과는 정해져 있었지만 검사 측과 변호인 측의 사건 조사 단계부터 마지막 배심원들이 결론을 내기까지의 과정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 것이었기에 차근차근 자신들의 힘으로 진실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흐뭇했다. 기특하고 애틋하고 안쓰럽고 예쁘기도 했다.

미미여사 소설답게 등장인물이 많았는데 배경이 학교인 만큼 각각 개성이 다른 학생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게 고민했었던 어린 철학자 가시와기 타쿠야, 똑 부러지고 새침하고 예쁘기까지 한 우등생 후지노 료코, 내성적이고 소심하지만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노다 겐이치, 등장부터 계속 물음표를 달아둘 수밖에 없었던 간바라 가즈히코, 철없고 비겁한 문제아 오이데 슌지,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야마자키 신고, 그리고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미야케 주리에게서 점점 독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많고 계속 화자가 바뀌고 급조한 듯한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오고 하다 보니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어렵기도 했다. 이야기라는 큰 줄기를 위해서 쓸모없는 몇몇 부수적인 잔가지는 쳐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다 읽고 보니 이 소설은 <모방범>, <화차>, <이유>와 같은 비교 선상에 놓기는 어려운 책이다. 같은 작가가 쓴 책이지만 앞선 세 권의 소설과는 태생이 다른 느낌이 든다. <모방범>, <화차>, <이유>가 음지에 가깝다면 <솔로몬의 위증>은 양지에 가깝달까. 오랜만에 나온 현대 미스터리 소설이라 꽤 기대했었는데 만족감보단 아쉬움이 더 크다.

글재주가 없어서 후기는 간단하게 썼지만, 안에 담겨 있는 것들이 많은 소설이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도 많고 느껴지는 것도 많다. 자녀가 있는 부모나 소설 속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의 청소년들이 읽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 자신의 나이, 환경, 상황에 맞는 책을 적절히 골라 읽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 만년의 행복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줄을 선다고 누구나 건네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기다리면 언젠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줄을 제대로 섰어도 자기 몫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애당초 설 줄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 1 사건 P.10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며 진실을 밝히려 들지 않아. 죄가 있는 인간일수록 더더욱 그래. 너희는 그걸 몰라. 난 알아. 수많은 사례를 봐 왔으니까." - 1 사건 P.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