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한니발>과 <한니발 라이징> 사이에 작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사이 일본인 친구가 생긴 것인지, 여행 갔다가 감명을 받으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에 심하게 심취를 하셔서 소설 전체에 왜색이 짙게 묻어난다. 일본 타령을 해도 개연성 있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뜬금없어서 재미도 없고 거부감만 느껴졌다. 중간 중간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하이쿠, 스즈무시 타령, 그 외 기모노, 갑옷, 검까지 주기적으로 찬양 하고 급기야 한니발이 일본어로 샬라샬라~ 총체적 난국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라고 있나 보다. 나중엔 레이디 무라사키 이름만 봐도 짜증이 밀려오더라. 일본 찬양 + 레이디 무라사키만 빠졌어도 최악은 아니었을 텐데 한니발 시리즈의 끝을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다니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또 별로였던 것이 왜 식인 연쇄살인범 한니발 렉터에게 구구절절 사연을 부여한단 말인가. 한니발 렉터가 우리나라 인간극장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사연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한니발의 과거는 미스터리로 남겨두는 편이 훨씬 좋았을 텐데 잘 만들어 놓은 캐릭터를 마지막에 가서 작가 스스로 뭉개버리다니 이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없느니만 못한 속편이었던 <한니발 라이징> 영화는 더 별로라던데 얼마나 별로인지 슬금슬금 호기심이 발동한다.


"작은 소년 한니발은 1945년, 어린 여동생을 구하려고 했던 그 겨울에 죽어버렸어. 미샤와 함께 그애의 마음도 죽어버린거야. 그렇다면 지금은 대체 어떤 인간일까? 지금으로서는 뭐라 적절히 표현할 말이 없군. 아직은 더 나은 단어가 없으니, 괴물이라고 부를 수밖에." - P.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