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는 대한민국 강원도 '동해' 바닷가. 월세 15만 원에 처음 얻은 집은 어머니의 예언대로 겨울엔 난방해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추워서 급기야 저자는 바닷가에 새로운 집을 짓는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그 바닷가 새집에서 쓰였다.

본격적인 시골 생활의 꽃은 단연 동물 키우기였다. 저자의 지인 둘리틀은 둘리틀이란 별명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닌 크레이지 하게 좋아한다. 그런 둘리틀이 마당이 있는 시골집과 조우한 결과는 그야말로 동물농장이었다. 처음엔 가볍게 시장에서 사온 귀여운 강아지로 시작했으나 이 강아지가 3대 지랄견으로 불리는 비글이었으니! 비글 '이달고'의 비극적인 운명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 다음엔 닭이다. 부화기로 스무하루 동안 병아리가 태어날 때까지 보살피고 사람이 들어가 살아도 될만한 닭장을 짓고 닭 모이는 10가지 곡식을 섞은 최고급이다. 이쯤 되면 정해진 최후만 제외하면 닭이 웬만한 사람 팔자보다 낫지 싶다. 닭 하면 달걀! 달걀 하면 닭! 처음 손에 넣은 달걀은 감격 그 자체였으나, 매일 같이 늘어나는 달걀에 감격은 곧 사라지고 만다. 익숙함이 낳은 부작용이다. 비글 다음으로 키우기 시작한 시바견 '사요리'는 매우 똑똑했으나 주인에게까지 언제나 거리를 두는 정이 없는 개였다. 비글 '이달고'와 시바견 '사요리', 두 개의 중간쯤 되는 성격의 개라면 그들에게 딱 좋을지 모르겠다.

둘리툴은 동물을 좋아한다. 하지만 둘리틀의 합리주의에 입각한 동물 사랑은 어떤 면에선 잔인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나 또한 동물은 동물, 사람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키우던 동물이 없어져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죽은 동물은 먹어 없앤다는 부분은 이해가 가면서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것인지 그저 소심한 것인지 새끼손가락만 한 열대어도 차마 죽게 놔둘 수가 없어서 몇 년째 키우고 있는데 요즘엔 이걸 왜 키우고 있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내게 무언가 생명을 새로 들이는 일은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서 고양이를 엄청나게 좋아하면서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이젠 독립한다고 해도 키우지 못 할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생명이 주는 무게가 더욱 무거워진다. 상처를 주기도 싫고, 받기도 싫다는 것이 더 정확한 내 속마음이다.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놓고 보니 동물 이야기도 정치, 종교만큼이나 답이 없는 주제이지 싶다.

경계 없는 집만큼이나 경계 없이 다가오는 시골 이웃들, 바닷가가 보이는 새로운 보금자리, 마당에서 뛰노는 동물들, 글을 읽는 내내 바다 내음이 실려왔다. 전에 읽었던 여행기만큼 매력적이진 않았지만 보다 편안함이 느껴져서 좋았던 책이다.


언덕에 옹기종기 조그만 집들이 들어차 있었다. 좁은 비탈길을 따라 그 위로 올라가보았다. 노인의 마른기침 소리가 들리고, 담에 걸어놓은 검은 그물이 보였다. 전형적인 어부 마을이었다. 마침 날이 아주 맑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이마에 와 닿는 햇살은 노랗고 습기라곤 없이 바삭거렸다. 파란 바다와 똑같은 색깔의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 도시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벽하고 거대한 일직선이다. 그 풍경이 좋았다. 그 이상이었다. 여기서 살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살기로 했다. -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