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아이 - 장용민

2013. 4. 6. 20:27



오랜만에 읽은 한국 추리 소설. 예전에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썼던 작가의 최신작인데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 후기에서 글을 쓰는 건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했었는데 이 정도면 꽤 잘 지은 집이지 싶다. <궁극의 아이>라는 집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들보 세 가지를 소개하자면 첫째로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와 과거를 기억하는 여자, 둘째로 돈과 권력으로 세계를 조종하는 악마 개구리 집단, 셋째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궁극의 아이다. 첫째와 둘째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지만 그들과 접목되는 세 번째 궁극의 아이는 꽤 새로웠다. 추리 소설의 특성상 스포를 알면 재미가 크게 반감되는지라 자세히 쓰지는 못하지만, 힘없는 어린아이를 몇몇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걸 보면서 인간의 욕심과 악함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궁극의 아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소설보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후반부쯤 그들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킬 계획을 발표하는 대목에선 현재 이 나라를 둘러싼 정세와 그 내용이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소름이 돋았다. 이 나라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까지 아주 제대로 맞아떨어지더라.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사랑'이었다고 했으나 내겐 인간의 욕심과 악행에 가려져서 그 '사랑'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추리 소설 정말 괜찮다'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책이 작년에 읽은 도나토 카리시의 <속삭이는 자>인데, 이 소설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볼 만한 괜찮은 추리 소설이었다. 우리나라 추리 소설쪽을 좀 파봐야겠다.


"한국 정치인들은 정권만 보장한다면 말을 들을 거요. 어차피 역사 따윈 안중에도 없는 저능아들이니까." - P.443

"미래를 본다는 건 강물에 흩어진 책을 모으는 것과 흡사한 일이야. 어떤 부분은 휩쓸려 가고, 어떤 부분은 번져서 읽을 수가 없지. 중요한 건 클라이맥스를 찾았다고 섣불리 결말을 예상했다간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거야. 질량 보존의 법칙과 비슷하지. 한번 발을 헛디디면 그 아래는 상상 이상의 심연이 기다리고 있어." - p.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