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차 - 서누

2012. 11. 11. 23:00



시대적 배경은 구한말. 친일 대갓집 도령 성주호와 그의 집사 홍기준은 비밀 별장에 거주하며 하늘을 나르는 수레 '비차'의 제작에 몰두해 있다.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 별장에 호기심으로 발을 들인 이해인은 우연히 하늘을 나는 괴물체를 목격하게 되고 비차의 존재를 함구시키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별장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다.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성격의 주인 나리 성주호, 다정한 집사 홍기준, 호기심 충만 한 소녀 이해인. 비밀 별장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성격은 특별할 것 없는 로맨스의 그것이지만 구한말이라는 혼란스러운 시대적 배경과 그들이 만들고 있는 비차로 인해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세 사람의 엇갈리는 로맨스의 분량은 적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한 번에 다 보여주지 않고 감질날 정도로 조금씩 풀어내는 로맨스와 비차를 중심으로 깊어지는 세 사람의 갈등과 고뇌가 흥미진진했던 소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성주호의 입장도 홍기준의 입장도 모두 이해돼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그들이 더욱 안타까웠다. 한자어와 낯선 지명, 단체명, 인명 등이 많아서 천천히 집중해서 읽어야 했지만, 본문 밑에 주석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달려서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시대적 배경이 배경인지라 일제의 만행은 필연처럼 등장한다. 그들의 만행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읽고 듣고를 반복했지만 접할 때마다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다. 용서받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선조의 피와 눈물로 지켜 온 대한민국이라는 작디작은 나라. 이렇게 작고 힘없는 나라가 지금까지 존재하는 건 모두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힘일 것이다. 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은 이 나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다른 이야긴데 요즘 자주 가는 사이트에 드라마 <모래시계>의 줄거리를 요약한 게시물이 올라오는데 보다 보니 이 드라마가 공중파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뤘다고 한다. 5.18에 대한 부분은 그냥 캡처로 보는데도 너무 슬펐다. 저렇게나 힘들게 얻은 민주주의인데 점점 퇴보하고 있으니... 일제의 만행과는 또 다른 의미로 슬프고 마음 아픈 우리네 역사. 하지만 절대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배우고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소설 내년에 드라마로 방영 예정이라는데 (책 띠지에는 2011년 방영 예정이라고 돼있던데 편성을 못 받았나 봄) 캐스팅이 어떨지 자못 궁금해진다. <아일랜드>, <네 멋대로 해라>를 썼던 인정옥 작가가 각본을 쓴다니 더 기대된다. 내 마음대로 캐스팅을 해보자면 성주호 역할엔 임주환, 이해인에는 한지민인데 홍기준 역에 어울릴 배우는 도저히 떠오르질 않는다. 키 크고 잘 생기고 연기 잘하는 남자 배우가 누가 있을까?! 캐스팅이 나쁘지만 않다면 드라마도 보고 싶은데 지금 검색해 보니 여주인공이 송혜교라는 기사가 있네. 좀 더 밝고 어린 이미지의 여배우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캐스팅은 내가 하는 게 아니니 신경 꺼야지. 마음에 드는 소설이라서 이래저래 글이 길어 졌다. 이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