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한강

2012. 11. 7. 21:24



한강 작가의 책을 몇 권 사뒀지만 정작 처음 읽게 되는 건 빌려 온 이 책이 되었다. 내 시간과 공간에 머물러 있는 내 것이 아니기에 언제나 빌려 온 책들은 내 독서 리스트의 우선순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말을 잃어 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 그들은 희랍어 시간의 강사와 학생으로 만나게 된다. 싱싱하게 살아 숨 쉬는 언어가 아닌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그와 그녀. 그 죽어버린 희랍어가 그들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건 계속 무언가를 얻고 또 잃는 일의 연속이다. 그 속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얻으면 얻은 대로 잃으면 잃은 대로 산 사람은 계속 살아갈 뿐이다. 나는 그래서 산다는 것 자체가 종종 무섭다. 글은 느리게 읽힌다. 책 전체가 아주 긴 장편의 시 같아서 느리게 천천히 곱씹으며 읽게 된다. 시인으로 등단한 작가라서 문체에 시적인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것 같은데 독자에겐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것 같다. 나는 이제 겨우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니 판단은 보류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