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공포의 계곡

홈즈&왓슨 콤비의 활약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에피소드다. 추리 그 자체보다는 사건 배경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홈즈의 추리가 돋보이지는 않지만 사건 배경이 되는 뒷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워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시간과공간사 전집은 책 순서가 사건 발생순으로 안 되어 있어서 뒤죽박죽이긴한데 난 귀찮아서 그냥 전집 순서대로 읽고 있다. 나야 예전에 셜록 홈즈 단편집도 읽었었고 영드 셜록 때문에 셜록 홈즈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라 상관없지만 셜록 홈즈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겐 공포의 계곡은 크게 매력 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출판사가 왜 이 책을 가장 앞에 배치 시킨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홈즈와 왓슨의 등장도 적어서 드라마로 만들기도 어려워 보인다.


02. 배스커빌의 개

영드 셜록 시즌2 에피2에 나왔던 이야기라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소설은 생각보다 재미있지는 않았다. 소설을 드라마와 비교해보자면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커다란 틀만 같았다. 소설 그대로 갔다면 그저 그랬을 텐데 마크의 귀신같은 각색으로 드라마가 한층 더 드라마틱 해지지 않았나 싶다. 소설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드라마도 드라마대로 매력이 있지만 아무래도 같은 작품이다 보니 비교를 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실 난 서양 쪽 고전 추리 소설은 한없이 지루해서 별로인데 그나마 지루하지 않고 괜찮게 읽은 것이 지금 읽는 셜록 홈즈 정도? 가장 지루했던 건 엘러리 퀸의 <Y의 비극>으로 이 책을 다 읽는데 아마 6개월이 걸렸을 거다. 추리 소설만큼은 현대에 쓰인 것들이 좋다. 그리고 서양보다는 일본이나 우리나라 추리 소설이 훨씬 취향에 맞는다. 책 읽다가 초반에 제임스 모티머 의사가 홈즈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때문에 빵 터졌었는데 그 부분을 옮겨보자면

"홈즈씨, 당신은 제게 대단한 흥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저는 장두(長頭)의 두개골과 안면의 상하 길이가 그토록 눈에 띄게 진화된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홈즈 씨가 괜찮으시다면 얼굴을 제 손가락으로 직접 만져 보고 싶습니다. 원형을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는 당신의 두개골 모형이 인류학 박물관에 진열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홈즈 씨의 두개골이 무척 탐나기까지 합니다."

안면의 상하 길이가 그토록 눈에 띄게 진화된 사람에서 진짜 소리 내서 웃었다. 역시 베니는 셜록 홈즈 역할에 딱 이었던 거지요. 셜록 홈즈가 두개골이 탐나는 남자였다니~ 그리고 홈즈와 왓슨은 진짜 뭔가 있는 느낌이다. 확실히 뭔가 있어!!!


03. 주홍색 연구 · 네 명의 기호

사건 발생순으로 따지면 가장 앞에 있는 에피소드 두 편. 우선 앞에 읽었던 두 권의 책보다는 훨씬 재미있었다. 사실 홈즈와 왓슨이 처음 만나서 서로 알게 되는 과정이 사건 해결보다 더 흥미로웠다. 드라마에선 택시 기사가 범인이었는데 소설에서 마차를 모는 마부가 범인! 소설과 드라마, 과거와 현재가 적절히 치환되고 각색되었다는걸 소설을 읽어 가면서 깨닫고 있다.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이런 부분을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네 명의 기호'는 돈 앞에서 사람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다. 돈은 무섭고, 사람은 더 무섭다. 이 사건에서 왓슨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아마 결혼까지 하는 것 같다. 그럼 홈즈는?!


04. 셜록 홈즈의 모험

드라마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보헤미아 스캔들' 을 비롯한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책. 전에 단편집에서 읽었던 내용도 있었는데 역시나 읽고 돌아서면 거의 다 잊어버리는 나는 기억나는 게 거의 없었다. 난 진짜 웬만큼 재밌지 않고서야 시간이 지나면 세세한 내용은 거의 다 잊어버리는 것 같다. 딴소리지만 회사에서도 내 기억력보다 보스 기억력이 훨씬 좋아서 나는 잊고 있는 걸 보스는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참 난감 하다. 그냥저냥 소소한 재미가 있는 단편들이었다.


05. 셜록 홈즈의 사건

이 또한 단편집인데 '세 명의 가리데브' 에서 왓슨이 총을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다. 옮겨보자면

"그것은 가치 있는 부상이었다. 그의 차가운 표정 뒤에 숨어 있는 우정과 사랑의 깊이를 확인한 나는 몇 번을 다쳐도 좋을 것 같았다. 순간 맑고 강인한 그의 눈은 눈물로 흐려지고 꽉 다문 입술은 부들부들 떨렸다. 나의 보잘것없지만 한결같았던 봉사의 세월이 순간 그런 식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절정을 맞고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홈즈가 자신 때문에 감정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몇 번을 다쳐도 좋다는 왓슨과 왓슨이 죽었다면 범인을 죽였을 거라는 홈즈. 정말 쿵짝이 잘 맞는 콤비가 아닌가! 이 둘은 그냥 천생연분이다. 누가 저 변덕쟁이 셜록 홈즈를 왓슨만큼 상대할 수 있겠느냔 말이지. 내가 왓슨이었다면 아마 조용히 연락을 끊었을 거다.


06. 셜록 홈즈의 회상

이 책 마지막 부분 해설에 작가 아서 코난 도일과 홈즈, 모리어티에 대해서 나오는데 그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우선 작가 코난 도일은 홈즈를 돈 때문에 만들어 냈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그에게 부를 안겨줬지만 코난 도일은 독자들의 관심이 홈즈에게만 쏠리자 홈즈를 증오하게 된다. 그는 결국 모리어티라는 인물을 급조하여 자신의 손으로 홈즈를 죽이게 된다. 하지만 다시 돈 때문에 홈즈를 살려내는 코난 도일. 아~ 애잔한 코난 도일이시여. 주목받고 싶은 글은 따로 있는데 엉뚱하게 돈 벌기 위해서 쓴 작품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으니 작가로서 화가 날만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사이의 갭은 사람을 때때로 미치게 하는 것 같다.


07. 셜록 홈즈의 귀환

마지막 8권은 아직 안 읽어봤으니 제외하고 7권까지 중에선 가장 재미있었다. 유독 7권에 실린 13편의 단편들이 소재도 기발하고 사건을 풀어가는 방법도 흥미진진했다. 시간과공간사 셜록 홈즈 전집엔 삽화가 꽤 많이 실려 있는데 상황을 설명해주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나는 좀 짜증 났다. 왜냐면 내가 상상하는 셜록과 존의 이미지는 영드 <셜록> 속의 베니와 마틴인데 삽화 속에 늙고 머리카락 빠진 셜록과 콧수염쟁이 존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제발 삽화로 제 상상을 깨지 말아주세요!!! 어쨌든 7권은 재미있었다는 결론.


08.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마지막 8권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죽어 가는 탐정'에선 진짜 홈즈가 죽는 줄 알고 조금 놀랐지만 역시 우리 홈즈가 그렇게 어이없이 죽을 리가 없지요. 홈즈가 해결 한 모든 사건 중에 가장 웃기지 않나 싶다. 해설에서도 쓰여 있듯이 홈즈는 연기자를 했어도 훌륭했을 것 같다. 연기력에 변장에도 능하니 준비된 연기자 셜록 홈즈! 왓슨은 매니저를 하면 되려나? 망상은 이쯤하고, 몇 달 전부터 읽기 시작한 전집을 드디어 다 읽었다. 미스터리 소설 역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서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목표 달성. 내가 셜록 홈즈에게 관심을 두게 된 데는 영드 <셜록>의 영향이 가장 컸고 전집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셜록>은 정말 잘 만들어진 드라마라는 사실이다. 원작 각색도 정말 잘했고 배우 캐스팅하며 연출, 음악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시즌3으로 끝날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긴 하지만 블루레이 출시되면 장만해놓고 평생 돌려 보겠어!!! 이렇게 매력 넘치는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을 만들어 낸 아서 코난 도일에게 감사를 표하며 길고 긴 리뷰는 이만 마무리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