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한 줄 한 줄이 모여 문단을 이루고 문단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소설은 허구 속 이야기이지만 가끔은 그 허구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지닌 실제와 가까운 글을 만날 때가 있다. <장미나무 식기장>이 그런 글이었다. 작가를 어미로 두고 태어난 일곱 편의 단편은 성격만 조금씩 다른 일곱 쌍둥이 같아서 이쪽에서 살며시 말을 걸어주면 어미의 눈치를 보느라 못다 한 자기네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풀어낼 듯싶다.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모든 이들이 동경하는 전형적인 '모성'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책 속의 어머니들은 "나는 누군가의 어머니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우리네 여성들이 자존감이 낮은 이유 중의 하나는 평생을 걸쳐도 자신의 이름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의 딸로, 결혼해선 누군가의 부인 아니면 누군가의 며느리로, 아이를 낳으면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기에 그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자신을 사랑하며 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식에게 희생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부모로서의 기본적인 책임과 의무만 다한다면 그들도 누군가의 부모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일 뿐이다.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다.

글에도 맛이 있다면 이 소설은 추풍령 감자탕 맛일 것이다. <추풍령> 단편에서 집을 나갔던 추풍령 엄마가 다시 돌아올 때마다 손수 끓여 온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던 그 감자탕. 혀가 얼얼하도록 지독히 맵고 뜨거운데 먹고 나면 어쩐지 비릿한 슬픔이 느껴지는, 뒷맛이 미끌한 음식. 추풍령 엄마가 끓여준 감자탕 그 맛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