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별로였다. 앞뒤 내용도 모르는 상태에서 불쑥 튀어나온 그와 그녀의 만남은 내게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리고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대화를 표시하는 문장 부호의 부재와 말줄임표의 남발, 작가의 의도적인 어색한 문단 나누기 때문에 초반엔 내용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의도적이라고 해도 문장 부호와 띄어쓰기, 문단 나누기 등은 될 수 있으면 정석대로 표시 해줬으면 좋겠다.


아…. 그런데 읽다 보니, 정확히 말하면 그와 요한이 만나는 순간부터 흥미로워지기 시작하더니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됐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와 그녀, 요한의 이야기가 묘하게 나른하고, 묘하게 슬프고, 묘하게 먹먹했다. 그와 그녀의 이야기도 그랬지만, 특히 요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읽을 때마다 가슴에 콕콕 박히는 기분이었다. 요한의 말들은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 옮겨 적을 엄두도 안 난다.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 생각해보면 이야기 속의 여주인공은 항상 예쁘다. 예쁘지 않은 주인공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의 그녀처럼 못생기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세상의 시선이 자꾸만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그런 그녀가 그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어려웠을지…. 그녀가 그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를 읽으면서 결국엔 울고 말았다. 책 읽으면서 울어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날 정도인데, 못생긴 그녀가 조용하고 잔잔하게 나를 울렸다. 그녀의 편지글에서 한번 울고, 정확히 어떤 부분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책 뒷부분에서도 한번 울컥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은 그와 그녀의 만남은 처음에 읽었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나기처럼 단번에 젖어들어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깃이 젖듯이 조금씩, 서서히….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빠져들게 되는 감정.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런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려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혹시나 초반에 읽다가 별로라고 느껴지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읽어보셨으면 한다는 거다. 쉽게 포기해 버리기엔 그 속에 담겨 있는 것들이 아까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