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란 - 비연

2011. 4. 7. 21:23



로맨스 소설이 읽고 싶어서 검색하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다. 뭐든지 미리 내용을 알고 보면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에 내용은 보지 않고 사버렸다. 확실히 재미있는 책이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작가의 필력도 이쪽? 세계에선 상당한 수준인 것 같다. 하지만, 로맨스 소설로서는 후한 점수는 못 주겠다. 왜냐! 심장까지 간질거리는 설렘도 없었고,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달달함도 없었고, 가슴이 턱 막힐 정도의 애절함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로맨스 소설을 기대하고 읽었는데 나에겐 조금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이 소설의 재미는 황제 윤과 후궁 기란의 로맨스가 아니라 진나라 궁중에서 펼쳐지는 암투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나라 실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속이고, 속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궁 안의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하다.

윤을 태종처럼 만들고 싶었던 자불태후와 성초는 미련하리만치 하나밖에 몰랐던 바보였고, 태종의 첫 번째 황후이자 태종을 사랑했지만 그 때문에 미쳐버린 효열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다. 효열은 윤이 황권을 강화하기 전까지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는데, 권모술수에 능해서 사람 뒤통수 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아주 무서운 인물이다. 무섭긴 해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선 가장 매력 있었다. 그리고 황제 윤의 이복형 이친왕 휘~ 이름도 바람 같은 휘~ 나는 휘가 한 번쯤 윤에게 반기를 들고 황제자리에 욕심을 냈어도 좋았을 거 같은데 끝까지 휘~는 바람과 같았다. 윤의 황후인 현인과 그녀의 양부인 유친왕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이 둘은 나에게 똥을 줬으니까…. 그리고 우리 얄미운 야맥~ 쏘맥, 치맥도 아닌 야맥~ 아주 못 되쳐 먹은 야맥! 야맥에 비하면 초반에 기란을 괴롭혔던 원귀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귀인은 그저 안타깝다 ㅠ.ㅠ

주인공에게 별 매력을 못 느껴서 그런지 쓰다 보니 윤과 기란에 대한 내용이 없네…. 분명 주인공은 윤과 기란인데 주인공보다 조연들이 더 매력적이고 눈에 들어오는 소설이었다. 로맨스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무너짐으로써 로맨스 소설로서의 매력은 바닥을 쳤지만, 사악한 조연들의 활약 덕분에 시대물로서의 매력은 UP~ 되어서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달콤씁쓸한 로맨스 소설을 원한다면 추천하지 않지만,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시대물을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나는 효열태후와 궁녀 매요의 캐릭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