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 김영하

2011. 3. 11. 23:51



작은 영화 수입 업체를 운영하는 김기영에겐 아내 마리와 중학생인 딸 현미가 있다. 평소엔 없던 두통으로 시작된 김기영의 하루. 출근 후 메일을 확인하던 그는 즉시 귀환하라는 4번 명령을 확인하게 된다. 즉시 귀환? 4번 명령? 글을 읽다가 한 발짝 늦게 그가 남파간첩임을 이해했다. 태어나 20년을 북에서 살았고, 그 후 20년은 남에서 살아온 그. 본문에 나온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옮겨 심어진 사람'이었다. 북에서 남으로 옮겨 심어진 사람. 그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감이 옅은 사람으로 남으로 옮겨 심어진 후엔 조용히 남한 생활에 적응하며 특별한 활동 없이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40대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신경질적인 두통과 함께 날아온 귀환 명령은 전혀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 책은 마치 미드 <24>의 포맷을 글로 옮겨온 듯하다. 갑작스러운 귀환 명령을 받게 된 남파간첩 김기영의 24시간을 실시간 중계로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두 개의 조국에서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았지만 어느 쪽 하나 온전히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그의 삶이 기구하다.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그래서인지 여러 픽션 작품에서 소재로 쓰이곤 한다. 이런 소재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 아파해야 하는건지, 어째야 하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솔직히 난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라서 남과 북의 문제에 대해선 특별한 관심은 없는 게 사실이다. 자주적인 통일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절실히 통일을 바라지는 않는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입시와 대학, 취업, 결혼, 가족이 훨씬 더 직접적인 문제이니까…. 가끔은 통일을 말하기엔 너무 멀리까지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