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 미야베 미유키

2010. 8. 12. 20:47


 
'모방범’ 사건으로부터 9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평온한 삶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사건의 트라우마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에게 한 중년 여자가 찾아와서 죽은 아들 히토시에게 예지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평소 그림을 좋아하던 히토시의 스케치북에, 도이자키 아카네라는 중학생 소녀가 부모에게 살해되어 16년간 마루 밑에 묻혀 있던 살인사건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있다는 것. 하지만 사건이 밝혀진 것은 소년이 이미 교통사고로 죽고 난 후였다. 실제로 히토시의 그림들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 시게코는 부인의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관계자들을 하나씩 찾아가 조사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아카네의 배후에 있던 한 남자의 존재가 드러나고, 시게코는 딸의 죽음에 대한 부모들의 석연찮은 태도에도 의문을 가지게 된다. 자기 손으로 딸의 죽음을 불러와야 했던 도이자키 부부의 비극은 어디서 연유했을까? 아카네의 남자친구이자 도이자키 부부와 기묘한 공생관계였던 수수께끼의 남자는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그 죽음의 비밀을 읽어낸 소년 히토시는, 그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을까? 파낼수록 하나씩 늘어나는 수수께끼, 말이 없는 두 사자(死者)의 행방을 좇는 걸음과 함께 한 가족의 커다란 비극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간 손대고 있던 책들은 몇권 있었는데 하나같이 진도가 나가질 않아서 그나마 술술 읽히는 미미여사의 책을 집어 들었다.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낙원>은 <모방범>을 집필할 무렵 꾸게 된 꿈이 계기가 되어 탄생한 작품이라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은 기분 나쁜 꿈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을 꿈이 그녀에겐 작품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니... 이 얼마나 엄청난 생각의 차, 재능의 차인가... 이런 '差' 때문에 그녀는 당대 최고의 작가이고 나는 글 잘 쓰는 작가들을 동경하는 한명의 독자에 불구한거구나 싶다.

미미여사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그녀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엔 단순하다 싶은 이야기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거미줄처럼 복잡해지고 촘촘해진다. 그렇다고 내용이 정리가 안되서 정신이 없는 것도 아니고 퍼즐처럼 잘 맞아 들어간다. (가끔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지면 퍼즐을 찾는것조차 어려울때도 있지만) 글자 하나하나가 실이 되어서 따라 읽다보면 점점 빠져들어 벗어날 수 없어지고, 포기하지 않고 그녀가 이끄는데로 잘 따라가다보면 그 마지막엔 내 뒤에 펼쳐진 장대한 거미줄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