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할아버지2 - 네코마키
1권을 재밌게 읽었던 터라 2권도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다. 읽는 내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보게 되는 만화다. 원작은 전부 컬러라던데 번역본은 일부분만 컬러인 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다. 그림체가 귀여워서 색이 입혀지면 더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 좋던데 아쉽다. 인생을 살면 살수록 아무런 망설임도 거리낌도 없이 순수한 애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은 동물밖엔 없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인간과 가까운 개와 고양이는 더욱더 그렇다. 애정을 주는 만큼 나를 믿고 따르는 작고 사랑스럽고 무해한 생명체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예쁘고 짠하다. 반려동물을 소유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학대당하고, 버림받는 동물들이 많은데 이런 부분도 정부 차원에서 개입해 새로운 규칙과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들은 안 하겠죠. 사람도 신경 안 쓰는 마당에.


한 스푼의 시간 - 구병모
어느 날,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게 죽은 아들로부터 택배가 도착한다. 내용물은 소년의 모습을 한 로봇. 세탁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명정'은 로봇에서 '은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생활하게 된다. 낡기는 하지만 늙지는 않는 로봇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난 역시 삐뚤어진 인간인지 로봇인 은결이 인간의 감정을 배워가는 것이 못마땅했다. 로봇은 그냥 차가운 쇳덩어리로 남겨두면 안 되는 건가, 굳이 쇳덩이에 온기를 불어넣어야 하는 걸까. 인간과 비슷해질 순 있겠지만, 인간이 될 수는 없는 존재에게 어설픈 감정은 혼란만 일으키지 않을까. 워낙 동족 혐오에 물들어 있는 인간이라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픽션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문제다. 


그 겨울에 봄이 오면 - 우지혜
오랜만에 읽은 로맨스 소설이자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던 로맨스 소설이었다. 죽음을 예고하는 그림자를 보는 천재 해커 신해수와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오만하고 당당한 남자 권운성 그리고 두 사람에게 모두 소중한 존재인 문산호. 이 세 명이 이끌어 가는 이야기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운성이보다 산호가 더 눈에 밟혀서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마지막 작가님의 후기를 읽으니 연재 당시에도 산호 인기가 폭발적이었던 모양이다. 아직 나의 덕후 레이더는 쓸만하다. 산호 커플의 이야기도 궁금한데 따로 연재된 건 없는 것 같다. 있는데 나만 모르는 걸지도?! 남주도 매력적이지만 이상하게 서브 남주에게 더 마음이 가는 소설이었다.


언더그라운드, 약속된 장소에서 - 무라카미 하루키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경, 옴진리교는 도쿄 중심부를 통과하는 5개의 지하철 노선에 중추신경계를 손상시키는 유독가스 사린을 살포한다. 하루키는 13명의 사망자와 6300여 명의 부상자를 남긴 최악의 사건을 르포르타주로 형식으로 풀어 두 권의 책을 남겼다. <언더그라운드>는 피해자 인터뷰를 <약속된 장소에서>는 한때 옴진리교 신자였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인터뷰 대상자가 많아서인지 분량은 <언더그라운드>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건이 일어난 아침 지하철 안에서의 상황을 읽다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만약 나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였다. 평소 성격으로 봐선 재빠르게 내리는 건 불가능할 것 같고 옆 칸으로 옮기는 정도가 최선일 것 같다. 사망자, 부상자 모두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을 텐데 그런 사고를 당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몸에 큰 부상이 없는 피해자일지라도 정신적인 후유증이 평생 이어질텐데 그 점이 가장 안타깝고 무서웠다.

<약속된 장소에서>는 과거 옴진리교에 몸담았던 신자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성향이어서 종교, 특히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의 심리가 무엇인지 항상 의문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궁금증이 풀린 것 같다. 인터뷰에선 어떻게 옴진리교에 입단하게 됐는지, 교주는 어떤지, 신자 생활은 어땠는지,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나오는 편인데 하나하나 모두 흥미로웠다. 나름의 결론을 내리자면 사이비 종교는 사람의 약한 부분을 이용해서 종교에 빠지게 만드는 것 같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 인류가 생긴 이래 종교를 이용해 사람을 움직이고 이익을 취하는 일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종교를 범죄로 악용하는 건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이미 종교가 아니라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하루키는 책은 역시 소설 빼곤 다 재밌다.


서랍 속 테라리움,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 용의 학교는 산 위에 - 구이 료코
구이 료코의 단편집 3개. 인터넷에서 고양이가 나오는 단편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충동적으로 세 권이나 샀는데 결과는 참혹. 이래서 충동구매는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인터넷에서 봤던 고양이 나오는 만화만 좋고 나머진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내용이 나쁜 건 아닌데 취향에 맞지 않는다. 단편 말고 연재 중인 장편이 인기가 많던데 차라리 그걸 사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엄청 오랜만에 사는 만화책이었는데 슬프다. 현재로썬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야 할 책 목록 1순위다.


혼자일 것 행복할 것 - 홍인혜
루나파크 인혜 씨의 새로운 수필집이 출간됐기에 바로 사들였다. 이번 수필집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독립과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예전엔 결혼 = 독립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엔 직장을 갖고 독립하는 경우가 많아진 듯하다. 물론, 독립이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것만큼 풍요롭고 든든하지는 않지만, 그 모든 장점을 상쇄시킬 '자유'라는 녀석이 있다. 모든 선택엔 명암이 존재하듯 독립 생활도 마찬가지다. 혼자이기에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 있지만, 혼자이기에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많은 독립생활. 개인적으로 결혼 = 독립보단 한 번쯤 혼자 살아보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같다.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적어지고 실생활에 필요한 가계에도 밝아지고 한 사람이 숨 쉬고 먹고 자는데 얼마나 많은 손이 가는지 깨닫게 될 테니까. 루나와 비슷한 나잇대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책이고 가볍게 기분전환으로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이갈리아의 딸들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전에 사둔 구판은 안 읽고 알라딘에서 특별판 판매하는 걸 사서 읽었는데 와, 이건 정말 굉장한 책이다. 어메이징! 2016년에 사는 나는 인식도 못 했던 것들을 1970년대에 이미 깨닫고 책으로까지 썼다니 작가님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이 책을 간단히 설명하면 남성중심의 현대 사회의 모습을 반대로 뒤집어서 보여주는 미러링의 표본이자 끝판왕이다. 이갈리아에선 여성을 움, 남성을 맨움이라 지칭한다. 움이 사회의 중심인 이갈리아에서 맨움은 움의 보호를 받으며 평생 수동적인 삶을 산다. 맨움의 상징은 페호 안에 평생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것이며, 피임과 육아, 가사 노동의 의무 또한 맨움에게 있다. 움이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는 동안 맨움은 집에서 얌전하게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사회인 것이다. 이에 불만을 가진 주인공 맨움 페트로니우스는 맨움해방운동을 주도하는데 그것은 지금의 페미니즘과 너무나 닮아있다. 공기처럼 존재해서 인식조차 못 하고 살만큼 깊게 뿌리내린 차별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걸 알아서인지 처음엔 통쾌하다를 외치며 읽다가 나중엔 맨움해방운동을 지지하게 된다. 단순히 성별 하나로 차별받는 게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은 곧 우리이기 때문에 응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성별 불문 모든 사람이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특별한 대우를 바라는 게 아니며 같은 사람으로서 평등하길 바라는 것뿐이라는 걸 모두가 깨달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