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꽃> 중간 감상문

2021. 10. 26. 19:46

나의 '믿고 보는 감독 리스트'엔 세 분의 감독님이 계신데 가장 오래된 안길호 감독과 왕남 김희원 감독, 카이로스로 가장 최근에 추가된 박승우 감독이다. 김희원 감독 작품은 세 번째로 보는데 볼 때마다 과하지 않으면서 모자라지도 않은 적정선을 잘 아는 감독이란 생각이 든다. 연출에 대해선 무지렁이지만 단 하나 확신하는 점이 있다면 잘 된 연출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여백이 있는 작품은 아름답다.

<돈꽃>은 재벌에게 가족을 잃은 재벌가 사생아의 복수를 다룬 드라마이다. 재벌가 배경, 출생의 비밀, 불륜, 삼각관계 등 막장 요소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어 볼 생각이 없었는데 김희원 감독 입봉작이어서 보기 시작했다. 보다 보니 내용은 분명 막장인데 연출과 연기 때문에 막장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안길호 감독의 왓쳐가 빈약한 극본을 연출과 연기로 멱살 잡고 엔딩까지 끌고 갔다면, 이 드라마는 막장 극본을 연출과 연기로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청아의 개로 불리는 주인공 강필주는 알고 보면 청아의 실질적인 주인이나 다름없다. 우리 필주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는걸??? 다들 필주한테 의지하면서 대우를 개차반으로 하니 애가 몇십 년이 지나도록 복수심에 불타는 거지. 장혁은 추노 이후 뭘 해도 대길이였는데 필주일 때는 그나마 대길이끼가 덜 하다. 하지만 연기에 힘을 주면 부지불식간에 대길이가 튀어나오니 연기에 힘을 좀 뺐으면 싶다.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세월이 지나도 잘 생겼고 몸도 잘 쓰고 눈에 서사가 있어서 좋다. 눈이 예쁜 우리 부천이는 낯이 익어 어디서 봤나 했더니 다른 드라마에서 봤더군. 저 잘 생긴 배우의 정체가 무언가 싶어 검색했다가 생각보다 많은 나이+기혼이라 놀랐었는데 그새 까먹은 모양. 부천이는 모현이와 함께 필주의 복수에 이용당하는 꼭두각시인데 찌질해서 짜증 났다가 불쌍하기도 했다가 모현이한테 하는 짓 보면 또 짜증나고의 반복이다. 배우가 잘 생겨서 더 그런 듯싶다. 이쪽도 눈에 서사가 한가득이라 마음에 든다. 초반엔 필주와 부천이의 사이좋은 투샷이 많아서 좋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적어져서 슬프다. 존잘+존잘=천연 안구테라피 였는데 ㅠㅠ

모현이는 배우 연기가 아쉽고 후반으로 갈수록 필주의 복수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거슬리기도 하는데, 모현이야 말로 아무 죄없이 당하기만 한 피해자라서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다. 감독 왈 이 드라마의 꽃은 이미숙이라더니 정말 아름답고 무서울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 이미숙이 연기하는 정말란은 독이 가득한 꽃 같다. 필주와 말란 둘만 있으면 그 미묘한 분위기 때문에 보는 내가 숨이 막힐 지경인데 후기를 찾아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사약길을 걸을 생각은 없지만 연상녀와 연하남 조합은 언제나 옳다. 필주는 옆에 부천이가 있어도 모현이가 있어도 말란이가 있어도 다 잘 어울리니 케미신인가 보다.

초반부터 이 드라마는 새드엔딩이 어울릴 거라 생각하면서 봤는데 과연 어떤 결말이 될지 궁금하다. 아직 9화가 남았는데 아끼고 싶기도 하고 빨리 보고 싶기도 하고 아아 어쩌란 말이더냐. 결말까지 다 보면 후기를 또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