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단상(斷想)

2019. 9. 23. 20:41

지난 주말, 친척 결혼식에 다녀왔다. 예전엔 매시간 식이 있어 정신없는 공장형 결혼식이 별로였는데, 지금은 한국 사회에 최적화된 결혼식 형태이며 아름답진 않지만 편리하고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파티 문화도 없는데 외국처럼 온종일 결혼식을 했다간 다들 고주망태밖에 더 될까 싶다. 한국식 결혼식은 편리한 교통과 주차, 맛있는 밥이면 만점이다. 이번에 간 곳은 강남 근처라 지방에서 올라가기도 편했고 주차가 불편하고 비쌌지만, 밥이 맛있어서 괜찮았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밥은 매우 중요하다. 매번 서울 갈 때마다 느끼지만 서울은 꼭 필요하지 않으면 차 없이 다니는 게 여러모로 이득인 듯하다. 네 시간 있었는데 두 시간은 무료에 1만 2천 원 할인까지 됐는데도 8천 원 냈으니 주차요금이 어마무시하다.

요즘은 동시 입장에 주례 없는 결혼식이 트렌드인 모양인데 주례가 있든 없든 남의 결혼식은 변함없이 지루하다. 고리타분한 주례를 안 드는 건 좋은데 축가 두 번에 편지 읽는 순서도 있어서 진행 시간은 거의 같다. 내 결혼식이어도 지루할까? 결혼해본 적도 앞으로 할 일도 없으니 평생 알 길이 없을 거 같다. 이젠 다들 포기했는지 나에게 결혼 얘기를 안 해서 좋다. 동네 슈퍼 사장님만 내 결혼을 포기해주신다면 완벽할 텐데... 사장님의 결혼 공격에 슈퍼를 끊은 지 n년차다.

이번 결혼식을 보면서 다시 한번,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복 중에 최고는 부모 복이란 생각을 했다. 본인의 스펙은 본인이 만든 것이지만 그 스펙을 만들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건 부모의 능력이니까. 정서적인 부분, 경제적인 부분을 평균 이상으로 커버해줄 수 있는 부모를 만나는 건 자식으로선 최고의 복이고 평균 수준만 돼도 엄청난 복이다. 물론, 같은 조건 아래에서도 자식마다 차이가 있는 걸 보면 타고난 기질 또한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결혼 생각도 없고 아이를 낳을 생각은 더욱더 없다. 자식에게 제대로 된 케어를 해줄 자신도 없고, 일개미로서의 일생은 내 대에서 끝내고 싶다. 이제 결혼식 축의금 기부도 거의 끝물이다. 나는 남은 인생 혼자 잘 먹고 잘살다 잘 가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고 더욱 정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