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독후감

2019.02.08 11:57



01. 옥상에서 만나요 / 정세랑 / 창비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정세랑 작가의 이름을 댈 것이다. 딱 꼬집어 좋아한다고 말할만한 작가는 현재로선 이분이 유일하다. 이번 소설집엔 아홉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인터넷 연재로 먼저 읽어봤던 '웨딩드레스 44'부터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그의 글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좋았던 글은 여덟 번째 '이혼 세일'이었다. 글 속의 이재와 닮은 친구를 딱 한 번 만난 적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호감을 얻으며, 많은 사람이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 다방면에 재능이 있으며 또래와는 다른 분위기를 가진 사람. 가깝게 지낼 수 있어 행복했던 사람. 연애 감정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매우 강하게 끌렸던 사람은 지금까지도 그 친구가 유일하다. 소설 속 경윤이 이재보단 이재가 이끌고 다니는 공기를 좋아했을지 모른다고 했을 때 과거의 나 역시 그랬었는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심각할 정도로 조용했고 웃지도 않았으며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방법을 몰랐다. 그런 내가 그 친구의 공기 안에 들어가면서 전보다 잘 웃고 좀 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경윤에겐 이재의 장아찌가 마법이었듯, 나에겐 친구의 존재 자체가 마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02. 죽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 마음산책 / E
'사는 게 뭐라고'를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읽어봤는데 전작의 재미엔 미치진 못했다. 사는 게 뭐라고에서도 나이 드신 분들의 바뀌지 않는 보수적인 사고방식이랄까 고지식함을 느꼈었는데 이 에세이에선 그런 면이 한층 두드러진다. 후반부 사노 요코와 주치의와의 대담이 정점이었다. 주제가 '죽음'이다 보니 전작보다 무거운 분위기이기도 하다. 나는 내 존재가 영원히 사라지는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지만, 죽음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고통이 두렵다. 혹여나 주변에 민폐를 끼칠까 그 또한 두렵다. 지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이란 좀 더 잘 죽기 위한 준비과정에 지나지 않는단 생각이 든다. 우린 모두 죽음으로 향하는 열차의 승객일 뿐이다.


03.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 / 아녜스 르디그 / 푸른숲
30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부인과 헤어진 '폴', 폴의 아들이자 자살한 아내를 잊지 못해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는 의사 '제롬',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마트 계산원 '줄리'와 그녀의 세 살 난 아들 '뤼도빅'. 어떤 접점도 없던 네 사람이 우연히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엔 부유한 남자를 만나서 팔자 고치는 신데렐라 이야긴가 싶었는데 그렇게까지 단순하진 않았다. 술술 잘 읽히는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뻔한 이야기였던 소설. 다 마음에 들었는데 행복의 완성은 짝을 만나는 거란 결론이 조금 별로였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여줬으면 더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04. 버드 박스 / 조시 맬러먼 / 검은숲 / E
보는 순간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죽이게 되는 정체 불명 괴물의 등장으로 인류는 혼란에 빠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을 피해 피난처로 온 맬러리는 그곳에서 자신의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다 죽은 다른 임산부의 아이까지 함께 기르게 된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맬러리는 두 아이 '보이'와 '걸'에게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떠날 그 날을 대비해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한 교육을 시킨다. 글을 읽는 내내 아이들에게 냉정해질 수밖에 없는 맬러리의 심정이 십분 이해되어 더 마음이 아팠다. 맬러리와 아이들의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삶의 기록이었던 소설. 안전한 피난처에 도착한 후 맬러리가 보이와 걸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때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05.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 어크로스
'추석이란 무엇인가?'란 재치 넘치는 칼럼으로 유명해진 김영민 교수의 에세이집이다.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그분의 책이 출간됐단 소리를 듣고 바로 사서 읽어봤다. 하지만 아쉽게도 책에 실린 글들은 처음처럼 강렬하지 않았고, 다소 어렵고 지루한 부분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내 취향의 에세이가 아니었다. 소설보다 더 취향이 갈리는 게 수필인데 무턱대고 사서 읽은 과거의 나를 탓해야지 어쩌겠나.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사지 말고 먼저 빌려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