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홀릭 - 윤창호

2016. 3. 20. 21:10



차가운 몸뚱이를 가지고 태어나서인지 추위에도 약하고 추운 곳도 싫어하는데 북유럽에 대한 로망만큼은 버리질 못하고 있다. 새하얀 설원 위에 알록달록한 건물들과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까지, 살인적인 물가를 고려하고서라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을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여행 에세이는 작가에 따라서 여행지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서 그 분위기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겨울 여행 에세이는 그중에서도 유독 고독한 느낌이다. 추운 날씨와 타국, 혼자라는 사실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고유의 외로움은 매력적이다. 본문을 읽다 보면 여행지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나라의 디자인에 대한 글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가장 재밌게 읽었다. 실용적이고 심플하면서 따스함까지 지닌 북유럽의 생활 디자인, 굉장히 탐나는 게 사실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저렴한 가격에 간결하고 실용적인 디자인 상품이 많은데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디자인은 한숨만 나온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을 때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사 왔는데 사진과 비교하면 글은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평범하다. 분명, 여행 중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글은 너무 굴곡 없이 평탄해서 읽는 사람에 따라선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가의 본업이 사진인걸 생각한다면 이 정도 글이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여행 에세이에선 사진보단 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또 하나 글을 읽으면서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너무 주관적인 느낌이라 글로 남기진 않겠지만, 이 작가의 책을 다시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숙소에 돌아와 잠을 청하려 해도 잠이 오질 않았다. 거실에서 TV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미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창밖으로는 텅 빈 거리가 내다보였다.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 거리엔 사람 발자국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사르륵사르륵 하염없이 눈만 내려 쌓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TV 소리인지 모를 대화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세상 끝까지 가 보자고 험한 길을 달려왔지만, 내가 찾는 곳은 결국 사람이었다는 것을···. - P.61~62

나도 커피 한 잔과 비스킷을 사서 기차 안에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열차 안의 포근한 훈기와 부드럽게 내리쬐는 햇살에 서서히 나른함이 밀려왔다. 기분 좋은 나른함에 아무런 저항 없이 몸을 내맡겼다.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느끼는 이 유유자적함. 어쩌면 나는 지금 이런 순간들을 위해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 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