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루나파크로 유명한 루나의 첫 에세이집. 루나파크를 언제 처음 알게 된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20~30대 여성들의 감성에 꼭 들어맞는 글과 그림이 좋아서 지금도 종종 홈페이지에 들르곤 한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라는 직업 때문인지 감각적이고 유행에 민감하단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에세이를 읽어보니 글까지 잘 쓴다. 괜스레 샘난다. 모니터가 아닌 종이 위에 찍힌 루나의 글은 굳이 어려운 단어를 끌어다 쓰지 않으니 막힘이 없고, 굳이 있어 보이려 더 하지 않으니 부담스럽지 않았다. 여기에 무게감을 살짝만 싣는다면 내겐 아주 마음에 드는 글이 될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낯선 장소에 둥지를 틀고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루나에겐 영국 런던이 그런 곳이었고 책 제목처럼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과감하게 직장까지 그만두고 런던으로 떠난다. 막상 런던에 도착하고 보니 단기 여행에서는 보려야 볼 수 없었던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씩 튀어나온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밤에 불 켜는 것조차 주인 눈치를 봐야 하는 거지 같은 숙소, 차가운 영국 사람들, 생각보다 알아듣기 어려운 영국 영어, 우중충한 날씨 등 초반 적응 기간에 상당히 고생하지만 친구 노난의 런던 방문을 계기로 조금씩 기운을 되찾는다. 노난과 함께하는 기간 동안 전수받은 혼자 사는 법과 혼자 노는 법은 노난이 떠난 후에도 루나의 영국 생활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런던에서 루나는 한국에서라면 그냥 손해 보고 넘겼을 일도 조근조근 따져 내 밥그릇을 챙길 줄 알게 됐고, 처음엔 뭔지 모를 두려움에 선뜻 문을 열지 못했던 동네 펍도 한번 발을 들이니 매일 같이 출근 도장을 찍으며 시원한 맥주 맛을 즐길 줄 알게 됐고, 미술관에 들러 좋아하는 그림 아래 앉아 꾸벅꾸벅 졸아보는 호사도 누리고, 일조량이 적어 햇빛만 비친다 싶으면 다들 몰려나와 일광욕을 즐기는 현지 사람들의 틈에 자연스럽게 끼어 함께 해바라기도 하고, 한국에선 미처 몰랐던 뮤지컬의 매력에 빠지기도 하고, 혼자만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는 법과 즐기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걸 굉장히 불쌍하고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은 대부분 그런데 그걸 티를 내느냐 안 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 기준에선 멀쩡한 성인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더 불쌍하고 이상한 데 현실에선 혼자 노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성격적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저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어렵다면 그냥 가만히나 있어 줬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말도 잘 안 통하는 낯선 도시에 혼자 뚝 떨어지면 나는 과연 어떻게 적응하며 살게 될까란 생각을 해봤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어떻게든 헤쳐나가겠지만 루나보다 몇 배는 더 우울한 시간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난 언어에서부터 막히니 영어 공부부터 해야 할 테고 후~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런던을 떠날 때 즈음의 루나는 확실히 처음 런던에 도착할 때보다 단단해져 있었다. 흐물거렸던 순두부가 딱딱한 돌멩이가 된 건 아니지만 부침 두부 정도는 된 것 같다. 루나는 이 책이 출간되고 일 년 후쯤 독립하여 현재도 열심히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루나파크에서 혼자 사는 루나의 모습을 들여다 볼 때마다 아직도 독립 못 한 나는 조금 뜨끔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마음이다.

'혼자 사는 삶'에 관심도 많고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은 요즘이다.


차별하지 않고, 타자화하지 않고, 없는 사람인 양 모르는 척하지 않고, 그저 '보통 사람'의 범주에 모두가 속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자기를 드러내며 한길을 자유로이 다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런던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 P.121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다. 사람은 혼자서도 살아지더라는 것. 그동안 나는 숱하게 '관계' 속에서 번민하며 살았다. 중고교 시절 좁디좁은 학교라는 집단 안에서, 소외되는 것을 죽음처럼 두려워하며 살다가 혹 대학에 가면 나아질까 희망을 품었거늘 결국 어느 사회에 있건 인간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한결같았다. (중략)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그토록 소외를 겁내왔지만 이렇게 철저히 관계에서 유리되어서도 살아지더라는 것. 죽을 만큼 외로워도 결국 죽지는 않는다는 것. - P.301~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