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 위화

2014. 12. 31. 21:26



<허삼관 매혈기> 글자 그대로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이야기다. 자신의 몸의 일부, 생명 일부를 가족을 위해 기꺼이 내놓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허삼관은 가족에게 큰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피를 판 돈으로 위기를 넘긴다. 매번 피를 팔기 전엔 강물을 오줌보가 터져나가기 직전까지 들이키고 돈을 받으면 돼지 간 볶음을 곁들여 황주를 마시는 것으로 몸보신을 한다. 소설 속에서 허삼관은 모두 다섯 번 피를 파는데 자신을 위해 피를 판 적은 한 번도 없다. 모두 가족을 위해서, 심지어는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의붓자식을 위해서까지 그는 피를 판다. 그의 피는 물보다 진했다.

작가는 허삼관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늙어가는 과정을 시종일관 차진 입담으로 풀어낸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키운 자식들은 늙고 힘없어진 아버지를 홀대한다. 함께 늙어가는 아내만이 허삼관을 챙길 뿐이다. 배경과 인물은 다르지만 우리네 아버지들의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허삼관의 인생. 각 인물이 뱉어내는 대사와 상황은 유쾌하기 짝이 없는 데 뒷맛이 쓰게 남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전에 한 번 읽다 말았는데 왜 그랬나 봤더니 서문 너무 길고 지루해서였다. 책을 읽을 땐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빼놓지 않고 읽는데 서문만 세 번이 나오니 읽다가 지루해서 던져놨던 모양이다. 조금만 더 읽으면 유쾌한 난장이 펼쳐지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 중국 작가의 글은 아주 드물게 읽곤 하는데 지금까진 마음에 드는 경우가 더 많았다. 유쾌함 속에 뼈를 숨겨둔 위화의 글도 무척 마음에 든다. 호감 작가 리스트에 추가해야겠다.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 거 아니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 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테니……."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 P.191~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