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주년, 아침까지만 해도 요리를 준비하던 아내 에이미가 남편 닉이 잠깐 외출하고 돌아온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거실은 난장판이 되어있고 아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로 유명세를 탔던 에이미의 실종은 순식간에 매스컴을 타고 미국 전역에 알려진다. 에이미 실종의 진상과 범인을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리뷰를 쓸 때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하려고 하는데 이 소설은 자제한다고 해도 세어나가는 것이 분명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소설이나 영화를 볼 생각이 있는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어주시길 바란다.

이 소설 읽고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엄청난 스케일의 부부싸움', '멍청한 남편 vs 소시오패스 아내', '뛰는 남편 위에 나는 아내', '끼리끼리', '똥 수거는 똥차가' 정도 되겠다. 그리고 또 하나 뭐든 부지런해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남편 엿 먹이기에도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에 비하면 내가 지금껏 했던 노력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에이미가 그 노력을 다른 곳에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기저에 깔린 것이 불안정한 관계로 뭘 해도 좋게 풀리진 않았을 것 같다. 그나마 닉이라는 먹잇감을 평생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마지막에 가선 닉에게 동정심까지 들뻔했는데 생각해보면 닉도 잘 한 게 없지 않은가. 솔직한 마음으론 제2의 닉과 에이미가 생기지 않도록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고 평생 배필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

길리언 플린의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데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괄호나 맞줄표를 지나치게 많이 써서 거슬린다. 문장부호나 기호를 남발해서 좋을 게 없는데 원서 자체가 그런 것인지, 번역에서 문제가 생긴 건진 몰라도 읽다가 자꾸 흐름이 끊겨서 짜증 났다. 본문 읽으랴, 괄호 안에 글 읽으랴, 맞줄표 안에 글 읽으랴, 도대체 어쩌란 말이더냐. 평소 책 읽을 때도 한 권만 진득하니 읽는 타입이고, 뭐든 한 가지에 집중하는 타입이어서 그런지 이렇게 왔다 갔다 지저분한 글은 정말 별로다. 그래도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 소설이라 나쁘진 않았다.


나는 뉴스를 통해 그들을 본다. 야위고 가냘픈 엄마, 언제나 경직되어 있는 엄마의 목에 있는 홀쭉한 나뭇가지 같은 힘줄들. 두려움으로 두 뺨은 불그레하고, 조금 지나치게 눈을 뜨고 모난 웃음을 짓는 아빠. 평소에는 잘생겼지만 이제 그는 한 장의 캐리커처, 귀신 들린 광대 인형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을 가엾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평생 동안 그들에게 하나의 상징이자 걸어 다니는 이상형에 불과했다. 살아 있는 놀라운 에이미. 바보짓 하지 마, 넌 놀라운 에이미야. 우리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 외동아이에게는 불공평한 책임이 따른다. 외동아이는 자라면서 자신은 부모를 실망시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죽어서도 안 된다. 주위에 자신을 대체할 어린애가 없으니까. 어린애는 자기 하나뿐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완벽해지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권력에 흠뻑 취한다. 독재자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 P.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