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죽음 - C.J. 샌섬

2014. 11. 30. 21:12



1537년 영국의 국왕 헨리 8세는 자신이 교회의 최고 우두머리라는 수장령을 선포한다. 뒤이어 헨리 8세의 신임을 얻고 있는 주교 대리 법무관 토머스 크롬웰의 주도하에 영국 수도원들의 해산작업이 시작된다. 그 과정 중 크롬웰이 스칸시 수도원으로 파견한 로빈 싱글턴 특사가 수도원 내부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크롬웰은 싱글턴 특사 피살 사건 진상을 밝히고자 곱사등이 변호사 매튜 샤들레이크를 스칸시 수도원으로 내려보낸다. 조수 마크 포어와 함께 수도원에 도착한 샤들레이크는 크롬웰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지만 사건은 좀처럼 풀리지 않을뿐더러 새로운 살인 사건마저 발생해 샤들레이크의 머리를 더 아프게 한다.

부패한 가톨릭 교회가 있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종교개혁을 진행하는 권력자들이 있다. 급진적인 개혁의 바람 속에서 대부분의 국민은 무지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역사 속 실제 특사들은 무척 잔인한 사람들이었다는데 소설 속 특사 매튜 샤들레이크는 표면적으론 개혁주의자 편에 서 있지만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이다. 다섯 살 때 곱사등이가 된 그는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만 여전히 장애에 대한 콤플렉스와 피해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의 불안정한 감정상태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감정선이 상당히 현실적이어서 샤들레이크라는 인물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본문이 612페이지에 이르는데 살인 사건의 범인 찾기는 굼벵이처럼 느리다. 화려함이나 박진감과는 거리가 먼 추리 소설로 종교 개혁 소용돌이 속의 혼란스러운 영국의 모습과 수도원 내부의 살인사건을 적절히 배치하고 있다. 또한, 작가 개인의 의견이나 감정을 절제하고 시종일관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다소 지루한 감이 있지만 그 점이 오히려 혼란스러운 시대적 배경이나 주인공의 감정선과 대비되어 소설 전체의 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완성하고 있다. 특유의 절제된 단정함과 그 안에 숨겨진 인간의 광기가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 어쩌면 우리 모두 조금씩 미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는 하느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나와 있지만 저는 우리가 그때그때 자신의 필요에 맞게 하느님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이 그 사실을 아시는지, 또 거기에 신경을 쓰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이 수사님, 이제 수도원뿐 아니라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 P.612